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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390. 양표 문선


[양표 문선 楊彪 文先]



양표의 자는 문선이며 홍농군 화음현 출신이다. 142년에 태어나 225년에 사망한다. 양수의 아버지이며 아내는 원술의 누이이다. 어려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에서 공부해 처음에는 효렴으로 추천되었다가 무재로 천거되어 삼공부로부터 부름을 받았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희평연간에 양표가 아는 것이 많다는 소문이 퍼져 빈 수레를 보내 의랑으로 삼았다가 시중, 경조윤이 되었다.

 

광화연간에는 황문령 왕보가 자기 문중 사람을 시켜 군 경계지역에서 혼자 이익을 독점하여 재물을 횡령해 7천만전의 이익을 보았다고 했다. 양표는 이를 간사하다고 밝히고 사례교위에게 알렸다. 사례교위 양구는 이에 따라 왕보의 죄를 올리고 죽이니 이 세상 사람중에 좋아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한다. 시중, 오관중랑장 이후에는 영천, 남양 태수가 되었다가,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시중, 영락소부, 태복, 위위 등을 역임하였다.

 

189(중평 6)에 사공이 되었고 그해 겨울 황완을 대신해 사도가 되었다.

 

190(초평 원년)에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나자 동탁은 연합군을 피해 천도를 할 생각을 하였다. 아무도 동탁의 생각에 대응하지 못하였지만 양표와 황완이 반박하였다. 동탁에게 화를 입을까 걱정한 순상은 동탁이 이미 마음을 굳힌 것을 보고 진, 한나라의 건국 초기와 형세가 비슷하다며 동탁의 비위를 맞춰주자 동탁은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동탁은 회의가 끝나고 양표와 황완에 대해 상주하고 둘을 면관시켰다. 양표가 나아가 사죄하니 곧 광록대부로 삼고, 십여일 뒤에 대홍려로 삼았다. 그후 소부, 태상이 되었다가 병이 들어 물러났다. 이후 다시 경조윤, 광록훈이 되었다가 다시 광록대부로 임명된다.

 

192(초평 3) 순우가를 대신해 사공이 되었다가 지진이 일어나 면직된다. 다시 태상으로 복직된다.

 

194(흥평 원년) 주준을 대신해서 태위, 녹상서사가 되었다. 이 때 이각과 곽사가 서로 권력을 다투느라 전쟁을 벌였는데 양표는 황제를 보필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위기에 순간에서도 피하지 않았다. 헌제가 동쪽으로 피신하자 이를 모시고 낙양으로 돌아와 상서령이 되었다.

 

196(건안 원년) 조조가 헌제를 보필하고 수도를 허현으로 옮겼다. 새롭게 천도했을 때 공경대신들이 모여있는데 연주목 조조가 입궐하여 조회에 참석했다. 조조는 양표의 얼굴색이 기분 나쁜 것을 보고 혹시 양표가 자기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여 술자리가 시작하기도 전에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양표 또한 병을 핑계로 떠났다.

 

이 당시 원술은 분수없이 질서를 어지럽히자 조조는 양표가 원술이랑 혼인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것을 핑계로 양표가 황제를 폐위하려 한다고 무고한 다음 그를 감옥에 넣어 대역죄로 몰고 가려 했다. 이 때 만총이 양표를 문초하게 되었는데 순욱과 공융 등은 죄상에 대해 설명만 듣고 형벌을 가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만총은 한마디 대꾸 없이 양표를 법대로 심문했고 며칠이 지나 조조에게 보고하기를 심문했지만 다른 말이 없다고 하며 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형을 하려 한다면 백성들의 신망을 잃을 것이라고 하였다. 조조는 그 날중에 양표를 석방시켰다.

순욱과 공융은 처음에 만총이 엄하게 심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매우 화를 냈지만 이러한 결과를 얻게 되자 오히려 만총에게 감사를 표했다.

 

199(건안 4) 태상으로 복직되었지만 1년 후에 물러났다.

 

206(건안 11)에 은혜와 덕배로 봉해졌던 모든 제후들이 지위를 빼앗기면서 제후의 지위를 빼앗겼다. 양표의 아버지 양석은 왕자를 교육시키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전에 진후로 봉해졌었다. 양표는 한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 생각하여 다리에 쥐가 난다는 것을 핑계 대며 다시는 조정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후로 10년이 지났다.

 

후에 양표의 아들 양수가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조조는 양표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어찌 이렇게 야위셨소?” 양표가 대답하기를 저는 부끄럽게도 한 무제의 신하였던 김일제와 같은 선견지명을 가지지 못해 자식을 죽게 하였습니다만 이제는 어미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에 조조는 안색이 바뀌었는데 이 것이 고사 노우지독의 유래이다.

 

225(황초 6) 나이 84세가 되어 집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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