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133. 양무 백방

왕초@ 2016. 2. 17. 12:29

[양무 백방 涼茂 伯方]

 

양무의 자는 백방이고 산양군 창읍현 출신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의를 논할 때는 항상 경전에 근가를 두어 옳고 그름을 처리하였다. 처음에는 조조에게 초빙되어 사공연에 임명되었고 높은 성적으로 천거되어 시어사에 임명되었다. 당시 태산에 도적이 많았는데 양무를 태산 태수에 임명하였고 10개월이 지나니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다니는 자가 1000여 가구나 되었다 한다.

 

이후 낙랑태수로 전임되었지만 요동에 있는 공손도가 양무를 멋대로 억류하여 부임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양무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공손도가 양무와 여러 장수들에게 조조가 멀리 정벌을 나가 업성이 비어있으니 내가 공격하면 누가 나를 막을 것이냐라고 말하였는데 제장들이 모두 동의하였다.

 

이에 공손도가 양무의 생각을 묻자 최근에 사해 안에서 큰 난리가 일어나 국가가 쓰러지려고 할 때, 장군께서는 10만의 무리를 끼고 편안히 앉아서 성공과 실패를 관망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된 자는 진실로 이와 같을 뿐입니다. 조공(조조)은 국가의 위기와 패망을 근심하고 백성들의 고통과 해독을 위로해 주었으며, 의병을 이끌고 천하를 위하여 잔적을 주살하였으니, 공은 높고 덕망은 넓어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이리하여 천하가 비로소 안정되었으며, 백성들은 편안히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장군의 죄상을 아직 책망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장군께서 곧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여 조공을 침공한다면 살고 죽는 결과는 하루아침도 못되어 결정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스스로를 위하십시오.” 라고 답하였다. 여러 장수들은 양무의 말을 듣고 모두 술렁였는데 한참 있다가 공손도는 양군의 말이 옳다라고 하였다.

 

후에 조정에서 양무를 불러 위군 태수와 감릉의 상으로 임명하였고 양무가 가는 곳마다 업적을 세웠다 한다. 조비가 오관중랑장에 임명되었을 때 양무는 장사가 되었으며 좌군사로 전임되었다. 위나가라 건국되었을 때는 상서복야로 승진했으며 후에 중위봉상에 이르렀다. 조비가 태자로 임명되었을 때는 태자태부가 되었다가 재직 중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