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163. 포훈 숙업

왕초@ 2016. 3. 1. 02:09

[포훈 숙업 鮑勛 叔業]

 

 

포훈의 자는 숙업이고 태산군 평양현 출신이다. 생년은 미상이나 226년에 사망한다. 포신의 아들이며 아버지 포신은 연주에 황건적이 쳐들어오자 조조를 돕다가 사망한다. 212년에 조조가 포신의 공적을 기록하면서 포훈의 형 포소를 신도정후에 임명하였으며 포훈을 불러 승상연에 임명하였다. 217년에 조비가 태자로 임명되었을 때 포훈을 중서자에 임명했다. 황문시랑으로 전임되었다가 지방으로 나가 위군서부도위가 되었다.

 

조비의 부인 곽여왕의 동생이 곡주현의 관리가 되었는데 관의 베를 훔쳤으므로 법률에 따라 목을 베어 시장에 버렸다. 당시 조조는 초현에 있었고 태자만 업성에 있었다. 태자는 그를 위해 여러 차례 친해 편지를 써서 죄를 사면해 줄 것을 청하였다. 하지만 포훈은 석방하지 않고 사실대로 상세하게 보고했다. 포훈이 이전에 동궁에 있을 때도 공정한 태도를 굽히지 않자 조비는 포훈을 좋아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비는 포훈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220 (황초 원년) 조조가 사망하고 조비가 즉위하자 포훈은 부마도위의 신분으로 시중을 겸했다. 조비가 선양을 받아 황제 자리에 오른 후 포훈은 항상 조비에게 백성들을 돌보고 사치스러운 행동을 금지해야 한다고 진언하였다. 또한 조비가 수렵을 나가려고할 때 포훈은 수레를 멈추게 하고 상소문을 올렸지만 조비는 상소문을 직접 찢고 수렵에 나갔다. 가는 길에 갑자기 멈추고 수행하는 신하에게 물었다. 수렵과 음악 중에 어느 것이 더 재밌냐고 물어보니 시중 유엽은 수렵하는 것이 음악보다 낫다고 하였다. 포훈은 반박하며 유엽을 비판하였다. 조비는 노여운 얼굴을 하고 수렵길을 멈추고 궁으로 돌아와 즉시 포훈을 우중랑장에 임명하였다.

 

223 (황초 4) 상서령 진군과 복야 사마의는 함께 포훈을 어사중승으로 추천하였는데 조비는 부득이 그를 기용하였다. 포훈이 모든 관료들을 엄히 다스리자 두려워하고 숙연해 않는 이가 없었다. 225년 조비가 오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논의하였는데 포훈은 면전에서 간언하였다. 조비는 크게 화가나서 포훈을 즉시 치서집법으로 좌천시켰다.

 

조비는 수춘에서 돌아와 진류군에 주둔하였다. 진류 태수 손옹은 조비를 알현하고 나가서 포훈을 방문하였다. 당시 진영의 보루가 완성되지 않아 표지를 세웠는데 손옹은 비껴서 가고 바른 길로 가지 않았다. 군영영사 유요가 그를 심문하려 하자 포훈은 보루가 완성되지 않았으니 용서하고 문제 삼지 말도록 했다. 낙양으로 돌아온 후 유요가 죄를 지어 포훈은 면직시킬 것을 상주하였다. 이에 유요는 몰래 포훈이 사사로이 손옹의 일을 불문에 붙인 것을 상주하였다.

 

정위는 법에 따라 징역 5년으로 판결하였는데 이에 삼관이 반박하며 법률에 따라 벌금 두근에 처해야 한다 하였다. 조비는 화가 나서 포훈을 죽이려 하였는데 종요, 화흠, 진군, 신비, 위진, 고유 등은 공동으로 상소를 올려 포훈의 죄를 사면할 것을 청하였다. 하지만 조비는 받아들이지 않고 포훈을 처형한다. 포훈은 내적으로 수양하며 청렴하고 베풀었기에 죽는 날 집에는 남은 재산이 없었다. 20일이 지난 후 조비 또한 붕어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포훈의 억울한 죽음을 한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