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함/삼국지 : 역사

삼국지 연표 188년

왕초@ 2016. 3. 15. 13:10

[188년 연표]

중평 5

 

※당시 각 국의 군주의 나이

후한 : 영제 20 (중평 4)

: 조조 (34 / 155년 생)

: 손견 (33 / 156년 생)

: 유비 (28 / 161년 생)

 

1. 변장, 한수의 난(188년 상황) -종결-

 

 

내용

º188 11월 왕국이 진창을 포위하자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조정에서는 황보숭과 동탁에게 4만의 군사를 주어 토벌하게 한다.

º관군이 반란군을 상대로 연달아 승리하자 한수는 왕국을 참수한 뒤 머리와 몸을 멀리 이격시켜 버린다.

º이후 반란군의 인물들이 서로 다투면서 내부 분열로 반란군은 와해 된다.

 

 

2. 장거,장순의 난 (188년 상황) -종결-

 

내용

º188 3월 조정에서는 유우를 유주목으로 임명하여 반란을 진압하게 한다.

º유우는 유주의 치소 계에 도착하자 주둔한 병사들을 물리게 하고 은혜와 신의를 넓게 펼치며 사절을 보내 장순의 수급을 보낼것 을 요구한다.

º오환족의 우두머리인 구력거가 유우에게 귀순을 하였다.

º장거, 장순의 무리에게도 상을 내려 회유책을 펼치자 장거, 장순은 세력을 잃고 선비족에게 달아나다가 부하에게 살해 당하며 반란은 종결된다.

 

 

3. 유언, 주목제도

 

내용

익주자사 유언은 후한 영제의 정치가 부패하고 혼란스러워지고 왕실에 여러 차례 변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조정에 주목 제도를 건의하였다.

 

자사나 태수가 뇌물로 관직에 올라 백성을 가혹하게 착취하므로 조정에서 마음이 떠나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청렴하고 명망 있는 중신을 선발하여 지방장관으로 삼아 나라를 진정시켜 안정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논의를 거친 그의 의견으로 곧바로 시행되지 않았지만 188년 3월에 실시된다.

 

 

4. 서원팔교위 창설

내용

자사를 목으로 변경 시행한 것에 이어 낙양에서 서원팔교위를 설치하였다. 자사를 목으로 변경하여 감시역할에 불과했던 자사를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지방관으로 변경 설치한 이후 군부에 대한 통제력 확대방안을 강구해 오던 조정은 도성방어와 조정의 군 통제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근위부대 서원팔교위를 설치한다.

 

서원팔교위가 설치된 후 낙양을 비롯한 경사 인근지역 내 군부대 작전을 비롯한 군 이동 및 배치 유격 임무 등이 모두 서원팔교위의 직접 통제권에 들어갔다.

 

서원팔교위는 환관이 직접 지휘하게 되었는데 이 것은 군부의 대장군 하진을 비롯해 반란 진압에 공이 많은 황보숭, 주준 등을 견제하려는 것이기도 하였다.

 

<서원팔교위>

상군교위 건석

중군교위 원소

하군교위 포홍

전군교위 조조

조군좌교위 조융

조군우교위 마방

좌교위 하모

우교위 순우경

 

서원팔교위의 우두머리인 상군교위 건석의 경우 십상시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5. 유비 근황

 

황건적의 난을 진압 후 의병으로 공을 세운 유비는 안희현의 위에 임명되었다. 군의 독우가 공적인 일로 현에 왔는데 유비가 만나기를 청했지만 거절당하였다. 유비는 직접 안으로 들어가 독우를 묶고 곤장 200대를 때리고 이어 인수를 풀어 그의 목에 매고 말뚝에 걸어 두고 관직을 버리고 도망간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독우의 횡포에 장비가 독우에게 매질하는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