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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135. 전주 자태

[전주 자태 田疇 子泰]

 

 

전주의 자는 자태이고 우북평군 무종현 출신이다. 169년에 태어나 214년에 사망한다. 전주는 독서를 좋아하고 검술에 뛰어났다. 190년에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고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났을 때 유주목 유우의 초빙을 받아 종사로 임명되었다. 유우의 명을 받아 장안의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사자로 파견되어 삭방을 거쳐 장안에 이르렀다. 헌제는 전주를 불러 기도위에 제수하였다. 전주는 헌제가 수도를 떠나 안정되지 못하므로 영예와 은총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굳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그의 의로움을 높이 샀으며 삼부에서 한결 같이 불러 벼슬을 주려 했지만 모두 거절하였다.

 

황제의 보명을 받은 전주는 유주로 돌아오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유우는 이미 공손찬에게 살해되었다. 돌아온 전주는 유우의 묘를 찾아 제사지내고 장표를 펼치고 읽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곡을 하고 떠났다. 공손찬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노하여 포상금을 걸어가며 전주를 찾았고 체포하였다. 공손찬은 전주에게 노여워 하며 어찌하여 유우의 묘의 사사로이 곡을 하며, 나에게 상주문에 대한 답서를 보내지 않는가?”라고 하였으나 전주는 오히려 한치도 흔들리지 않고 그를 비판하였다. 공손찬은 그의 답변이 용기 있다고 생각하여 풀어 주고 주살하지는 않았으나 그를 군영의 아래에 가두어 놓고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어떤 사람이 공손찬에게 전주는 의로운 인물이므로 예우로 대하기는커녕 또 다시 그를 가두었으니 민심이 떠날까 두렵습니다라고 말하자 공손찬은 즉시 전주를 석방하고 보내주었다. 전주는 돌아간 후에 모든 종족과 그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원수를 갚지 못함을 탄식하며 서무산의 깊고 험준한 산 속으로 들어가 마을을 만들고 부모를 봉양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성들이 그에게 귀의하니 몇 년 사이에 5000여 가구나 되었다. 사람들은 전주를 마을의 우두머리로 추천하고 법령을 만들어 마을을 통치해 나갔다.

 

원소는 그를 흠모하여 5번이나 초빙하였고 그의 후계자 원상도 예의를 갖추어 거듭 초빙하였으나 전주는 모두 응하지 않았다. 과거 오환족이 우북평군에 있던 고관들을 다수 살해한 것을 원망하려 오환족을 토벌하려 하였지만 자신 혼자 이루기엔 부족하였다. 207년 조조가 오환족을 정벌하고 전주를 초빙하였다. 조조는 전주를 사공호조연으로 임명하고 친히 접견한 후 그에게 몇가지 문제에 대해 물었다. 다음날 조조는 명령을 내려 전주를 무재로 천거하고 수현의 영으로 임명했지만 바로 임지로 보내지 않고 군대를 잠시 무종에 머물도록 했다. 당시 장마철이라 무종은 강가를 따라 낮은 곳에 위치하였으므로 도로가 막혀 통하지 않았다. 거기다 샛길에 적군이 지키고 있어 대군이 움직일 수 없었다. 이에 전주는 2백년 동안 이용이 끊겨 있던 노룡 방면의 옛 샛길을 안내하며 진군할 것을 권했고 이를 받아들인 조조는 노룡을 통해 오환의 본거지를 공격했다. 오환은 노룡을 통한 샛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조조군이 사라지자 철수한 것으로 믿고 있었으나 유성에서 불과 2백리 지점에 갔을 때 적은 비로소 깜짝 놀라게 된다. 오환의 선우 답돈은 조조의 대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사로잡혀 참수당한다.

 

요동에서 원상의 머리를 베어오자 조조는 명령을 내려 원상을 위해 곡하는 자를 처벌하겠다 하였다. 전주는 일찍이 원상의 부름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아가 원상을 조문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조조는 이 사실을 알고도 묻지 않았다. 조조는 전주의 가족과 친족 300여 명을 업성에 주둔하게 하였고 수레, , 곡식, 비단 등을 하사하였지만 전주는 전부 일가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조조를 따라 형주 정벌에 종군하였다. 조조는 전주의 공이야 말로 특별히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전의 작호로써 전주를 봉했다. 전주는 상서를 올려 자신의 사양이 진심임을 죽음으로써 맹세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조조는 듣지 않고 그를 강제로 불러와 임명하려고 한 것이 네 차례나 되었으나 전주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을 집행하는 부서의 관리가 전주를 탄핵하여, 그는 본송이 교활하고 도를 어기며 작은 절개를 내세우니, 응당 관직을 박탈하고 형벌로써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조조는 이 건의를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며 오랜 시간을 끌었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폭 넓게 상의하였는데 태자 조비, 상서령 순욱, 사예교위 종요 또한 그의 생각을 존중하여 사사로운 뜻을 억지로 빼앗지 말고 전주 본인의 뜻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조는 전주가 평소 하후돈과 친했으므로 하후돈을 보내 작호를 받기를 권했지만 전주는 만일 부득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나는 당신 앞에서 목이 잘려 죽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조조는 끝내 전주의 뜻을 굽힐 수 없음을 알고 깊게 탄식하며 의랑으로 임명했다. 이후 4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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