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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3. 조비 자환

[조비 자환 曹丕 子桓]

 

조비는 조조의 2남으로 변황후 사이에 출생한 적자이다 패국 초현 출신이며 187년에 태어나 22년에 사망한다. 태어날 때 하늘에 푸른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후광처럼 머리 위를 감쌌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조조의 영재교육을 받고 여섯 살 때 궁술을 마쳐 좌우 어느쪽으로 자유자재로 쏠 수 있었다. 여덟 살 땐 말에 올라탄채 활을 쏠 수 있게 된다. 검술도 좋아해 여러 스승에게 사사받고 모든 검법을 숙달하며,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여덟 살에 문장을 쓰고, 고금의 경서와 그 주석, 제자백가 등에 널리 통달했다고 한다.

 

197(건안 2) 유부인이 낳은 장남 조앙이 장수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여, 그 후 변부인이 정실이 되었으므로, 조비의 후계 지위는 굳건해 보였다. 그러나 환부인 사이에 태어난 조충이 어릴 때 부터 총명하여, 조조는 처음에 그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208년 조충도 13세의 어린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211(건안 16) 오관중랑장에 임명되었고 부승상에 오르지만, 조조가3남 조식의 능을 아껴 이때에도 후계가 결정되지 않았다.

 

217(건안 22) 위나라의 태자로 책봉되었고, 이때 조비의 나이는 31세 였다.

 

220(황초 원년) 조조의 죽음으로 조비는 승상,위왕의 지위를 이어받게 된다. 그는 먼저 환관이 모든 관서의 영 이상으로 승진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 후 그 해에 조비는 한 헌제 유협에게 하내군 산양현 1만호의 식읍을 주고 산양공이라 하였다, 조비는 한나라 조정의 역법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자의 예로 모든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상서를 올릴 때에도 신이라 칭하지 않게하였다. 수도에서 태묘에 제사를 행할 때에도 제사 음식을 올릴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산양공 유협의 네 아들을 열후에 봉하고, 할아버지 조숭을 태황제라 하였고, 부친인 조조를 무황제라 하였다. 왕태후를 존중하여 황태후의 칭호를 주었다. 조비도 황제로 올랐으며, 수도를 허창에서 낙양으로 옮긴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조비가 헌제를 협박하여 제위를 넘겨받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삼국지 정사]에는 이와 같은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조비는 황제 즉위 후 선정을 베풀고 국력 증강에 노력하였다, 그래서 조비 시대에 위 왕조는 최전성기를 누려 제갈량 조차 조비가 황제에 있을 때에는 함부로 침공하진 못했다.

 

손권이 사자를 파견하여, 표장을 상주하고 관우에게 사로잡혔던 우금등을 돌려 보낸다. 조비는 태상 형정에게 부절을 주어 강동으로 가서 손권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오왕으로 책봉하였다, 우금은 돌아온 후 선친인 조조의 무덤의 무덤지기로 임명하였다. 우금은 조조의 무덤의 번성 전투때의 자신이 관우에게 살려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분통이 터져 죽었다.

 

손권이 이릉에서 유비를 격파하자 촉나라 대장 황권이 부하들을 이끌고 항복하였는데, 조비는 황군을 중용하는 등 관대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그 후 손권을 두 차례에 걸쳐 공격하였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226(황초 7), 조비는 병세가 위독해지자 부인 견씨의 아들이었던 조예를 황태자로 책봉 한 후, 조진과, 조휴, 사마의, 진군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사망하였다. 이때 조비의 나이는 40세 였으며, 제위에 오른지는 7년이었다. 조비 사후 위나라는 계속 제갈량의 침공과 권력이 점차 사마씨에게 넘어가게 되어 멸망하게 된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조비가 후계 경쟁자였던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짓지 않으면 처형한다고 한 칠보의 시 사건이 나온다. [삼국지 정사]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조비는 조식을 지원한 정의,정이 형제를 처형하고, 조조의 장례를 두고 술에 취해 포악오만해져 사자를 협박하였다고 하는 상소 때문에 처형당할 뻔 하였다. 다행히 모친 변황후의 주선으로 지위 격하에 그친다.

또 다른 동생 조창의 경우 임성군에 봉해지지만, 그의 무략을 두려워 했는지, 하는 일마다 박해를 받아 223(황초 4) 불우한 나날 속에 병사하고 만다. 또한 일찍이 조비는 친척 조홍에게 재물을 빌리려고 하였지만 거절을 당하자, 이후 감정을 품고 황제가 되자 조홍의 식객이 범한 죄를 이유로 처형하려 하지만, 이것도 모친 변태후의 주선으로 죽음만은 면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부분으로 조비가 형제들을 탄압하여 조씨 가문의 힘을 약화 시킨 것이 위나라가 멸명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조비가 일찍이 요절하여 사망하였기 때문에 위나라가 멸망하는 지름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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