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본초 袁紹 本初]
원소는 자가 본초 이고 여남군 여양현 출신이다. 태어난 연도는 기록 되어 있지 않으나 202년에 사망한다. 원소는 후한말 군웅의 한 사람으로 고조부 원안 이후 4대 연속 삼공(태위, 사공, 사도)의 지위에 있었던 명문 가문 출신이다. 태어날 때 부친인 원성이 죽어 유복자로 자랐으며 모친은 노비이다. 원소는 풍모가 빼어나고 위엄 있는 용모였으며 지위가 낮은 선비도 허리 굽혀 존경하였으므로 수많은 선비들이 그에게 의탁하였다.
십상시의 난
원소는 영제 시대에 대장군 한진의 연(속관)에서 시작하여 곧이어 시어사,가 되었으며 얼마후 중군교위로 옮겼다가 사례교위로 승진한다. 영제가 붕어한 후 하태후의 오라버니이며 대장군이었던 하진은 원소와 함께 환관들을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태후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탁을 불러서 하태후를 위협하려 하였다. 환관 중상시와 황문시랑은 이 소식을 듣고 하진을 찾아가 사죄하고, 하진이 조처하는 대로 따를 것이라 하였다. 그 때 원소는 하진에게 이 기회에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재삼 권유했지만 하진이 동의하지 않았다.
하진은 원소에게 책략을 갖춘 낙양의 무장 관리를 시켜 환관을 감시하고 감찰하도록 하였다, 또 원소의 동생 호분중랑장 원술에게 호분중에서 온후한 200명을 선발하여 황궁으로 들어가 무기를 들고 황궁의 각 전당 문을 보호하는 환관을 대신하여 궁중 문을 경호하게 했다.
중상시 단규 등은 거짓으로 하태후의 명을 빌려 하진에게 상의할 것이 있어 궁중으로 들어오라 한 후 하진을 살해했다. 원술은 호분을 인솔하여 남궁 가덕전과 청쇄문에 불을 지르고 단규 등을 협박하여 나오도록 했지만, 단규 등은 나오지 않고 소제와 진류왕을 위합하여 소평진에서 도주했다. 원소는 환관을 참수하고 사예교위 허상을 죽이고 병사들을 지휘하여 모든 환관들을 붙잡고 모조리 죽였다. 원소는 환관의 나이가 많고 적거나 품행이 바른 사람이었다 해도 모두 죽였으며, 어떤이는 수염이 없다는 이유에서 환관으로 오해 받아 죽기도 하였다.
원소가 급히 단규등을 추격하자 단규등은 황하에서 자살하였고, 동탁이 소제와 진류왕을 모시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동탁이 원소를 불러 소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황제로 삼으려 하자 원소는 거짓으로 동의 하는 척 하면서 동탁과 반목하다가 결국 기주로 도망갔다. 동탁은 그를 추격하려 하였지만 원소를 편드는 명사들의 반대로 회유책을 취해 원소를 발해태수로 임명한다.
계교 전투(반하 전투)
190년(초평 원년) 원소를 발해군에서 군대를 일으켜 반동탁 연맹에 들어가 맹주가 되었으며 스스로 거기장군이라 칭한다. 동탁이 낙양을 불태워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하려 하자 원소는 이에 대항하여 기주목 한복과 유주목 유우를 황제로 추대하려 하였지만 유우가 거절한다. 이에 191년 반동탁 연합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후에 한복의 군대가 안평에 주둔하고 있다가 공손찬에게 패하였다. 공손찬은 군대를 이끌고 기주로 들어왔다. 동탁을 토벌한다는 명목이었으나, 사실은 한복을 습격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참패하고 지휘력을 잃은 한복은 영내의 반란과 인접세력의 침공에 시달린다. 원소는 공손찬의 움직임에 맞춰 북쪽으로 진군하면서 이들을 격파하거나 회유,병합하여 급격히 세력을 늘렸다. 원소는 한보글 설득하여 기주를 양보할 것을 권한다. 이때 한복의 측근들이 필사적으로 반대하였지만 한복은 원소에게 기주목의 지위를 양도한다. 기주목을 양도받은 원소는 공손찬의 사촌동생인 공손범에게 발해태수의 지위를 양도해 공손찬에게 발해군을 분할해 주는 형식으로 매듭지으려 했지만, 미루어지자 공손찬은 사촌동생 공손월을 파견하여 원술과 우호를 맺었다, 원술은 손견과 공손월을 파견해 원소의 간접적인 세력권 내에 있던 양성을 공격 하였지만 패배하고 공손월은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공손찬의 대군을 두려워한 원소는 공손범에게 바로 발해태수직을 양도하고 화해하려 했지만 공손범은 오히려 발해군의 군사를 이끌고 공손찬과 합류해 공격해 나가자 원소 또한 군사를 일으켜 반하의 상류에서 공손찬과 교전했다. 원소는 공손찬에 비해 압도적으로 불리하였지만 계교에서 공손찬을 산산히 격파한다. 이 때 공손찬의 진형이 무너지자 승리를 확신하였지만 후방에 있던 원소의 본진이 약해진 틈을 타 도망가던 공손찬의 기병에게 포위되고 만다. 원소는 ‘대장부는 적에게 돌진하여 전사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하며 나아가 싸우며 이에 모든 병사들이 분발한다. 병력이 적어 본진이라 생각 못한 공손찬군이 퇴각하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에도 공손찬은 거듭 군사를 일으켜 원소를 공격하였다.
북방 제압
192년(초평 3년)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되고 동탁의 잔당 이각과 곽사로 인해 혼란하자 참모 곽도가 ‘황제를 영입하여 우리 세력권 내에 있는 업으로 천도를 강행해야’한다 라고 하자 원소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결국 헌제는 조조에게 보호 받는 처지가 된다.
같은 시기 반하 전투 이후에도 전투는 여러 곳에서 한동안 계속 되었는데, 원소와 공손찬은 평원군 일대에서 교전을 벌였다. 공손찬이 패배하자 다급해진 공손찬은 다음해에 원소와 화친을 맺었지만 이 직후 원소가 위기에 몰리자 곧 이를 파기하고 원소를 공격하였다.
193년(초평 4년) 흑산적의 총수 장연은 원소와 공손찬이 싸우는 틈을 타 원소의 근거지인 업성을 습격한다. 이 때 원소군의 수뇌부는 공손찬을 격파하고 화친을 맺어 박락진에서 전쟁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수뇌부는 경악에 빠지지만 원소는 평소의 모습을 전혀 잃지 않고 태연하게 행동하였다. 원소는 업으로 진격해 창암곡에서 흑산적 두목 우독을 격파하고 녹장산에서는 좌자장팔의 군대를 전멸시킨다. 청우각,이대목,황룡,좌교,유석,우저근 등을 공격하여 대파한다. 업은 3개월만에 수복되고 상산에서는 장연까지 격파한다.
이전 전투들로 인해 공손찬은 점점 잔인한 성품이 두드려져 신망을 잃게 되고 백성들은 악정에 시달리게 되는데 백성들은 열광적으로 원소를 맞이하고 포구에서 원소군과의 전투에서 참패한 공손찬은 195년 역경에 요새를 짓고 수비에 전념하지만 199년(건안 4년)에 결국 멸망하게 된다. 그 영토를 병합하자 원소의 세력은 기주,유주,병주,청주 등 4주에 미친다. 공손찬이 멸망한 후 원소는 맏아들 원담을 보내 청주를 관리하게 하였는데, 저수는 ‘이와 같이 하는 것은 화의 시작입니다”라고 하였다. 원소는 듣지 않고 각 주에 아들들이 다스릴 수 있게 하였다. 이리하여 둘째 아들 원희는 유주를 외조카 고간에게는 병주를 다스리게 하였다.
관도 전투
조조는 정치적 배려에서 원소에게 대장군의 지위를 양보하는 등의 회유책으로 원소와의 전쟁을 피하면서 서서히 힘을 축적한다. 하지만 양자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었다.
200년(건안 5년) 조조는 유비를 서주로 파견하여 원술을 막도록 했지만 원술이 죽은 후 서주를 빼앗아 원소와 손을 잡고 대결하려 한다. 그러나 원소는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조조는 서주에서 유비를 정벌하고 있었을 때 전풍은 조조의 배후를 치기를 간언 하지만 원소는 원상의 병을 이유로 허가하지 않아 기회를 놓치고 만다. 유비는 결국 패배하여 원소에게 도망쳐 온다.
원소는 군대를 여양에 주둔시킨 후 안량을 보내 백마에 있는 유연을 공격하도록 했다. 조조는 유연을 구하기 위해 출병했고 안량과 싸워 이겨 참수하고 연진에서는 문추를 참수하자 원소의 군대는 크게 흔들렸다.
저수는 지구전을 할 것을 원소에게 권하지만 원소는 저수의 간언을 듣지 않고 진영을 모아 점점 앞으로 나아가 관도에 접근해서 적과 싸웠다. 원소는 누대를 높게 세우고 흙으로 산을 쌓고 조조의 군영에 화살을 쏘았는데 조조가 발석거를 만들어 누대를 공격하여 모두 부수었다. 원소는 또 땅 밑으로 길을 파서 조조의 군영을 습격하려 하였지만 조조는 긴 참호를 파서 공격에 대처하였다. 조조는 한편으로는 원소의 치중을 습격하여 무찌르고 식량을 모두 불태워 없앴지만 그래도 불리하였다. 원소와의 오랜 싸움으로 백생들은 견대지 못할 정도로 피곤에 지쳐 수많은 사람들이 모반을 하여 원소에게 호응하였다. 조조를 벼랑 끝에 몰아 세우지만 저수만이 조조의 기습에 대비해야 한다 하였지만 저수의 간언을 듣지 않았고 결국 야밤에 오소에 주둔한 보급기지가 조조의 기습으로 어이없게 무너져 괴멸적인 패배를 초래한다. 그 후 202년 원소는 패배라는 정신적인 타격으로 병을 얻어 조조에게 반격을 꾀하는 기회도 얻지 못한채 고뇌속에서 죽고 만다. 원소는 막내아들 원상을 후계자로 지목하려 하였지만 그것을 공표하기 전에 세상을 뜬다. 이 일로 장남 원담과의 분쟁으로 인해 원씨 가문은 멸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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