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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358. 여범 자형


[여범 자형 呂範 子衡]



여범의 자는 자형이며 여남군 세양현 출신이다. 생년 미상이나 228년에 사망한다. 젊어서 현의 관리가 되었다. 여범의 용모와 자태가 빼어났다고 한다. 읍 사람 중에 유씨라는 자는 집안이 부유하고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여범은 유씨에게 구혼을 했고 그 여자의 어머니는 여범을 싫어하여 딸을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유씨는 여범을 높게 평가하고 그의 딸과 혼인을 시켰다.

 

이후에 여범은 난리를 피해 수춘으로 갔고 원술의 세력 밑에 있던 손책을 만났다. 손책은 여범을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하고 여범 역시 손책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여범은 자신을 따르는 식객들과 함께 손책의 휘하로 들어갔다.

 

당시 손책의 어머니는 강도에 머물고 있었는데 손책은 여범을 보내 맞이하도록 했다. 서주목 도겸이 여범은 원씨를 위해 정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현의 관리에게 여범을 고문하여 취조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여범의 식객들이 나서서 구출해 준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다. 당시 여범과 손하만이 손책을 수행하며 함께 고생을 하였다. 손책은 이 둘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언제나 함께 당에 올라 손책의 어머니 앞에서 술을 즐겨 마셨다.

 

후에 여범은 손책을 따라 여강 토벌에 종군하였고 원술에게서 병마를 빌려 강남지역을 평정할 때에도 손책을 따랐다. 장강을 건너 횡강, 당리까지 가서 장영과 우미를 무찔렀으며 소단양, 호숙을 함락시켰다. 이에 여범은 호숙의 상으로 임명됬다. 손책은 말릉과 곡아를 평정하여 착융과 유요의 잔여 세력을 거둬들여 여범의 군사와 기마를 증가시켰다. 후에 여범은 완릉현의 현을 겸임하고 단양의 도적들을 토벌하고 오군으로 돌아와 도독으로 승진하였다.

 

당시 하비의 진우가 오군태수라고 칭하고 해서에 주둔하면서 엄백호와 내통했다. 손책은 직접 엄백호를 토벌하러 가고 여범과 서일을 보내 진우를 공격하도록 했다. 여범과 서일은 진우의 대장 진목의 목을 베었다. 또한 능양에서 조랑을 공격하고 용리에서 태사자를 공격하는 일에도 참가했다. 여범은 정로중랑장에 임명되고 강하로 출정하였다가 돌아오는 길에 파양을 평정시킨다.

 

후에 손책이 사망하자 여범은 오군으로 달려와 상례에 참가했고 후에 손권이 재차 강하로 출정했을 때 여범은 장소와 함께 남아서 지켰다. 적벽에서 조조와 싸울 때 여범은 주유와 함께 공격하여 무찌르고 비장군으로 임명되고 팽택태수를 겸했다. 유비가 수도로 돌아와 손권을 만날 때 여범은 유비를 구금할 것을 은밀히 요청하기도 했다. 후에 평남장군으로 승진하고 군대를 시상에 주둔시켰다.

 

손권이 관우를 토벌하러 갈 때 손권은 여범에게 건업을 지켜줄 것을 부탁하였다. 손권이 관우를 무찌르고 형주를 취하자 무창을 수도로 삼았는데 여범을 건위장군으로 임명하고 완릉후로 봉한 뒤 단양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위나라 장군 조휴, 장료, 장패 등이 공격해오자 여범은 서성, 전종, 손소 등을 지휘해 수군으로 동구에서 조휴 등을 막았다. 이 공로로 여범은 전장군으로 승진하고 남창후로 바꿔 봉해졌다. 이어 양주목으로 임명된다.

 

여범은 위엄 있는 모습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그가 관할하는 지역 백성들 가운데 육손과 전종 및 귀공자 같은 이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고 정중하게 대하며 감히 가볍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하고 다녀도 근면하게 일하고 법령을 받들었기 때문에 손권은 그의 충성심을 기뻐하고 그의 사치를 질책하지 않았다.

 

228(황무 7) 여범은 대사마로 승진하였지만 인수가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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