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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383. 능통 공적


[능통 공적 能通 公積]



능통의 자는 공적이며 오군 여항현 출신이다. 생몰년 미상이다. 능조의 아들이며 능조와 더불어 오나라를 섬긴다. 손권이 강하태수 황조를 공격할 때 아버지 능조가 사망하였고 아버지의 공로로 별부사마로 재수되고 파적도위가 되어 아버지의 병력을 맡았다. 후에 산적을 토벌하는데 따라가 손권이 보둔을 격파하고 먼저 돌아오고 남은 마둔의 무리 1만여 명은 능통과 장이 등을 남겨 두어 이들을 공격하고 포위하게 하니, 기일이 되자 공격하였다.

 

기일이 되기 전 능통은 진근과 만나 술을 마셨다. 진근은 강성하고 용감하며 기분이 내키는 대로 해서 한 자리에 앉은 자들을 업신여기며 능멸하고 술을 드는 것도 법도에 따라 하지 않았다. 능통이 그의 모멸과 오만함을 싫어하여 면전에서 비난하고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이에 진근이 화가 나 능통을 욕하며 그의 아버지 능조까지 욕하자 능통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지 않으니 이로 인하여 술자리가 끝났다. 진근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길에서도 능통을 모욕하자 능통은 참지 못하고 칼을 꺼내 진근을 찔러 죽인다.

 

능통은 이 일로 인해 마둔을 공격하면서 진근을 죽인 죄를 씻기 위해 몸소 앞장서서 싸움에 임했다. 적을 격파하고 귀환하자 능통은 스스로 군정에게 가 결박을 받았고 손권은 능통의 과감함과 굳센 마음을 장하게 여겨 공으로 속죄하게 한다.

 

후에 손권이 다시 강하를 공격하자 능통을 선봉으로 삼았고 우강에 진입하여 황조의 장수 장석을 참수하고 그 배의 사람들을 다 붙잡았다. 돌아와 손권에게 보고하고 군대를 이끌고 길을 같이하여 수륙 양면으로 진격하였다. 여몽이 적의 수군을 격퇴시키자 능통은 먼저 성을 공격하여 크게 노획하였다. 이 공로로 능통을 승열도위로 삼고 주유 등과 함께 오림에서 조조를 막고 격파하도록 하였다. 이어 조인을 공격하였고 승진하여 교위가 된다.

 

능통은 어진 선비와 가까이 지내며 재물을 가벼이 여겼다. 또한 공손하였고 수하들을 잘 대하며 의를 중시하였다. 주로 불리한 시점에서 후위를 맡거나 불리하지 않아도 돌격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먼저 창을 들고 뛰어갔기 때문에 손권은 능통을 크게 신임했다.

 

환현 공격에도 참가하였고 탕구중랑장으로 임명되어 패국의 상을 맡았다. 여몽 등과 함께 서쪽으로 3군을 취하고 익양에서 돌아와 합비로 가서 우부독이 되었다. 합비전투에서 손권이 군사를 철수시키는데 선두 부대가 출발하자 위나라 장수 장료 등이 나루터 북쪽을 엄습해 왔다.

 

손권이 선두의 병력을 뒤쫓아 가 되돌리려 했으나 병력이 이미 멀리 떨어져 있어 그 사세가 서로 미치지 못했는데 능통이 수하 300명을 거느리고 포위를 무너뜨리며 손권을 붙잡고 지켜 내며 탈출시켰다. 적들이 이미 다리를 무너뜨렸지만 다리에 속한 양쪽 판은 그대로 있으니 손권이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갔고 능통이 다시 돌아와서 싸우니 주위 병사들은 거의 다 죽었고 자신 또한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수십 명을 죽인 후 손권이 무사히 빠져나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탈출한다. 다리가 무너지고 길이 끊겨 있어 능통은 갑옷을 입은 채로 자맥질하며 돌아왔다. 능통이 수하 300명 중 살아돌아 온자가 없는 것을 보고 애통해하지 그 슬픔을 스스로 이기지 못했다. 손권이 소매를 당겨 눈물을 닦아 주며 말하길 공적, 죽은 자는 이미 죽었고, 실로 경은 살아 주었는데 어찌 사람 없음을 걱정하오?”라고 하며 위로했다. 이 때 능통의 상처가 심해서 손권이 배에 능통을 남겨 두고 그의 의복을 갈아주었다. 또한 상처가 탁씨의 좋은 약을 쓰니 죽지 않았다.

 

능통은 편장군의 임명되고 본래의 병사보다 많은 병사를 주었다. 이 때 같은 군 출신의 성섬이 손권에게 천거되었는데 그의 큰 자질이 능통을 넘는다고 하였다. 손권은 능통 같으면 만족한다고 하며 성섬을 불렀다. 후에 성섬이 불러져 밤에 도착했는데 이 때 능통이 이미 자리에 누웠다가 이 말을 듣고 옷을 챙겨 입고 나가 그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였다.

 

능통이 산중의 사람들이 아직 굳세고 용맹하니 위엄과 은혜로 회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손권이 동쪽을 점령하고 또한 토벌하는 영을 내리고 그 지역의 성에서는 능통이 요구하는 바는 모두 먼저 주고 나중에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능통은 언제나 군사들을 아끼니 군사들 또한 그를 존경했다. 병사 1만 명을 얻어 그의 본현을 통과하는데, 걸어서 관청의 문에 들어가 징리들이 3개의 판을 품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공경하게 예를 다하고 옛 친구처럼 대하니 은혜로운 뜻이 더욱 융성하였다.

 

일을 마치고 나가던 차에 병에 걸려 사망하니 능통의 나이 49세였다. 손권이 소식을 듣고 벽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애통해 하니 며칠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하였다. 장승을 시켜 그의 애도문을 지어 새기게 하였다. 당시 두 아들인 능열과 능봉이 나이가 어리자 손권이 궁 안에서 기르고 친자식처럼 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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