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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148. 관녕 유안

[관녕 유안 管寧 幼安]

 

 

관녕의 자는 유안이며 북해군 주허현 출신이다. 158년에 태어나 241년에 사망한다. 16세에 아버지를 잃었는데 친척들은 그가 고아이고 가난한 점을 여겨 장례 비용과 옷을 보냈으나 모두 사양하고 재산에 맞추어 장례를 마쳤다. 관녕의 신장은 8척이며 용모가 수려하였으며 평원현의 화흠 같은 현의 병원과 친하게 지내었다.

 

황건적의 난으로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관녕은 병원, 왕렬 등과 같이 요동으로 피난을 갔다. 공손도를 그들을 위해 관사를 비우고 접대하였지만 관녕은 공손도를 만난 후 산의 계곡에 초가집을 지었다. 당시 요동으로 피난 온 사람들은 대부분 군의 남쪽에서 거주하였는데 관녕은 군의 북쪽에 거주하며 집을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후에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점점 그를 따라갔다.

 

조조가 사공으로 있을 때 관녕을 불러 관리로 삼으려 했으나 공손도의 아들 공손강이 조조가 보내온 임명서를 중간에 가로채고 전하지 않았다. 중원이 점차 안정되어가자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관녕만은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223년에 사도 화흠이 관녕을 천거하였고 조비가 황제에 오르고 관녕을 초빙하자 가솔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공손공은 군의 남쪽 교외까지 전송하고 재물을 선물하였지만 관녕은 요동에 거주하면서 공손도,공손강,공손공이 준 재물을 모두 밀봉하여 공손공에게 돌려보냈다.

 

관녕이 고향으로 돌아온 후 조비는 관녕을 태중대부로 임명하였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예가 즉위한 후 노육이 사도의 직책으로 관녕을 추천하였지만 조예는 거부하였다. 태위 화흠이 자리를 사양하고 관녕에게 양도하려 했지만 조예는 이를 거부하고 광록훈에 임명해 부르도록 하지만 관녕은 자신을 초망지신이라 부르면서 이를 사양한다.

 

황초 연간부터 청룡연간까지 관녕을 부르는 소명이 몇 차례 내려왔으며 항상 8월이 되면 쇠고기와 술을 하사하였다. 청주 자사 정희를 통해 불렀지만 관녕은 이를 사양하였다. 241년에 태복 도구일, 위위 맹관, 시중 손옹, 중서시랑 왕기는 관녕을 추천하여 불러들이려 하였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84세의 나이로 관녕은 사망하였다. 조정에서는 아들 관막을 낭중으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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