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덕 영명 龐德 令明]
방덕의 자는 영명이며 남안군 환도현 출신이다. 젊었을 때 군리와 주의 종사를 역임하다가 초평 연간에 마등을 따라 모반한 강족과 저족을 공격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웠기 때문에 교위까지 승진했다. 건안 연간에는 조조가 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토벌할 때 원상은 곽원과 고간 등을 보내 하동을 공격하여 점거하였는데 조조는 종요를 관동으로 보내 여러 장수들을 지휘하게 하여 토벌하게 하였다.
마등은 원상과 밀약을 맺고 있었지만 종요의 설득으로 마등은 아들 마초와 방덕을 파견한다. 방덕은 마초를 따라 평양에서 곽원과 고간을 방어하였는데 선봉에 서서 곽원과 고간을 공격하여 크게 무찌르고 곽원의 목을 배었다. 이 공로로 중랑장에 임명되고 도정후에 봉해진다. 후에 황건적의 일당인 장백기가 홍농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방덕은 마등을 따라 장백기를 토벌하러 가서 동효와 서효 사이에서 그를 무찔렀다.
방덕은 전투 때마다 항상 선봉에 서서 적의 진영을 함락시키고 적군을 퇴각시켰으므로 마등의 군대에서 가장 용맹했다. 후에 마등이 조정의 부름을 받고 위위로 임명되자 방덕은 마초에게 남아 서량에 있었다. 조조가 위남에서 마초를 공격하자 방덕은 마초를 따라 한양으로 달아나서 기성을 지켰다. 후에 또 마초를 따라 한중으로 달아나 장로를 섬겼다.
조조가 한중을 정벌하자 방덕은 사람들을 따라 투항했다. 조조는 평소 방덕의 날랜 용맹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입의장군으로 임명하고 관문정후로 봉하였다. 후음과 위개 등이 완성을 점거하고 조조에게 모반하고 관우와 내통하였다. 방덕은 부하를 인솔해 조인과 함께 완성을 공격하여 후음과 위개를 참수했다. 조인은 관우와 한수를 두고 대치하게 되는데 조조는 곧 우금이 지휘하는 원군을 보내 조인군에게 합류시킨다.
관우가 조인이 있는 번성을 포위하였을 때 방덕의 사촌 형 방유가 한중에서 유비를 받들었기 때문에 번성의 장수들은 방덕을 의심하였다. 방덕은 항상 “나는 나라의 은혜를 깊이 입었으므로 뜻을 세워 나라를 위해 죽겠소 나는 몸소 병사를 이끌고 관우를 공격할 것이오. 올해 내가 관우를 죽이지 못하면 그가 나를 죽일 것이오”라고 하였다. 후에 직접 관우와 교전하여 화살로 관우의 이마를 맞추었다. 당시 방덕은 항상 백마를 탔으므로 관우가 있는 번성의 군사들은 그를 백마장군이라고 부르며 모두 두려워했다.
조인은 방덕을 보내 번성 북쪽으로 10리쯤 되는 곳에 주둔하도록 했는데 마침 열흘 넘게 비를 만나 한수가 범람하고 번현의 물이 땅 위로 대여섯 척이나 올라왔으므로 방덕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물을 피해 제방으로 올라갔다. 관우가 배를 타고 공격을 하였는데 큰 배의 사면에서 제방 위로 화살을 쏘았다. 방덕은 몸소 갑옷을 입고 화살을 쏘았는데 빗나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장군 동형과 부곡장 동초가 항복하려 하자 방덕은 그들을 죽였다. 날이 밝을 무렵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싸웠지만 관우는 더욱 거세게 공격하였고 화살이 떨어지자 짧은 병기를 써서 싸웠다.
방덕은 독장 성하에게 “내가 듣건대 훌륭한 장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구차하게 살려 하지 않고 열사는 절개를 훼손시켜 목숨을 구걸하려 하지 않는다고 하오. 오늘이 내가 죽는날이오”라고 말하며 더욱 결렬하게 싸웠다. 물이 점점 불어났으므로 관리와 병사들은 모두 투항하였다. 방덕은 휘하 장수 한 명 오백 두 명과 함께 활을 당겨 쏘면서 작은 배를 타고 조인의 진영으로 돌아가려 하였지만 물살이 급하여 배가 전복되고 활과 화살이 모두 떨어져 오직 배만 껴안고 물 위에 떠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 관우에게 붙잡혔으나 서 있기를 고집할 뿐 무릎도 꿇지 않았다.
관우는 “당신의 형이 한중에 있으니 나는 당신을 장수로 삼으려 했는데 무엇 때문에 일찍 투항하지 않았소”라고 물었는데 방덕은 관우에게 심하게 욕하며 “이놈 무슨 투항을 말하는가! 위왕은 병사 100만을 거느리고 천하에 위엄을 떨치고 있다. 너의 유비는 용렬한 인물에 불과한데 어떻게 위왕에 필적하겠는가!. 내가 차라리 나라의 귀신이 될지언정 적의 장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관우는 방덕을 참수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매우 비통해하며 눈물을 흘리고 방덕의 두 아들을 열후로 삼았다. 조비가 왕위에 오른 후 사자를 방덕의 묘로 보내 책서를 내리고 시호를 장후라 하였다. 방덕의 아들 방회 등 네 명에게 관내후 작위를 주었다.
[삼국지 연의]에서 나오는 방덕의 모습은 대부분 정사와 유사하지만 정사에서는 마초가 가족과 방덕을 버리고 가는 모습이었던 것에 비해 연의에서는 방덕이 병 때문에 마초를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관우와의 전투에서는 우금의 부장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며 관을 메고 출전한다. 관우와 겨뤄 승부를 내지 못할 만큼의 실력을 보여준 한편 관우의 팔에 화살을 맞추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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