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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263. 오질 계중

[오질 계중 吳質 季重]

 

오질의 자는 계중이며 제음군 출신이다. 177년에 태어나 230년에 사망한다. 오질은 가난하고 문벌이 없는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귀한 신분과만 놀았고 향리와는 교제하지 않았다. 관직에 나아갔지만 그 지역에서는 선비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문장에 뛰어나고 재주, 학문이 넓고 통달하여 조비의 심복이 되었고 여러 제후들에게 경애를 받았으며, 형제간에 잘 처신해 마치 전세의 누군경이 5후 사이를 노닐었던 것과 같다고 하였다.

 

조조가 후계자 문제를 결정하지 않았을 무렵 조식이 미사여구를 늘여놓고 조조의 출정을 전송한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 조비에게 귓속말을 하여 말없이 눈물을 흘리도록 하였다. 조조가 조비 쪽이 더 진심으로 자기를 위하는 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조비가 후계자로 책봉되자 진군, 사마의, 주삭 등과 더불어 일명 사우로 불리는 측근이 되었다.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 받아 제위에 오르니 특히 총애를 받으면서 북중랑장에 임명되고 열후에 봉해지면서 사지절독유병제군사가 되어 신도를 다스리게 되었고 점점 지위와 벼슬이 올랐다. 이런 파격적인 대우를 등에 업고 오질은 오만해져 다른 이들을 종종 함부로 대하는 등 난폭한 행동을 자행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주삭과 함께 조진이 살 찐 것에 대해 함부로 대하는가 하면 북중랑장으로 있을 때 당시 유주자사였던 최림이 머리를 숙이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고 최림을 비방하여 하간태수로 좌천시키는 등의 일을 일삼기도 하였다고 한다.

 

226년에 조비가 사망할 때 시를 지었고 조예가 즉위한 후에도 오만하고 방자한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고향에 갔다가 사람들이 자기를 꺼리고 냉대하자 원망하는 말을 하다가 동향 사람인 동소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다. 230년에 시중이 되어 조정으로 복귀해 오나라의 호종이 거짓 문서를 꾸며 오질이 오나라에 투항한다는 내용을 퍼뜨리려 했으나 한발 늦은 뒤였다. 진군을 헐뜯어 조예에게 문책하도록 하기도 하였지만 주변사람들은 오질이 잘못되었다고 여겼다. 같은 해 여름에 사망하였고 시호를 추후라 하였는데 아들 오응이 후에 이의를 제기하여 위후로 바꿔 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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