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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38. 손견 문대

[손견 문대 孫堅 文臺]

 

손견의 자는 문대 이며 오군 부춘현 출신이다. 156년에 태어나 192년에 사망한다. 손견이 손무의 자손 일 것이라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손견은 잘 생기고, 도량이 넓고 결코 다른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과감한 행동이 특징이라 한다.

 

유년시절

손견은 어린나이에 현의 관리가 되었다. 17세 때 부친과 함께 배를 타고 전당현에 이르렀을 때 해적 호옥이 상인들의 재물을 약탈하여 나누는 광경을 보았다. 주변 상인들은 두려워 접근하지 않았는데 손견은 부친의 만류에도 칼을 들고 해안으로 올라가 손을 흔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신호를 하니 해적들은 관군이 체포하러 온 것으로 착각하여 도망가버린다. 손견은 그들을 쫓아가 해적의 목을 하나 베어 돌아온다. 이 때문에 손견은 명성을 떨치게 되고 서리교위로 임명된다.

 

172(희평 원년)에 회계의 허창이 구장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양명황제라고 칭하였다. 허창의 아들 허소가 여러 현을 부추기니 모은 무리가 수만명이 되었다. 손견은 1천명의 군사를 모아 관병과 함께 힘을 합쳐 그들을 물리친다. 이 일로 손견은 염독현의 승이 되었다가 여러해가 지나 우이현의 승으로 전임되었고 다시 하비현의 승으로 전임된다.

 

황건적의 난과 반란군 집압

184(중평 원년) 황건적의 우두머리인 장각이 위군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장각은 신령이라 하며 신도들을 거느리고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조정에서는 황보숭과 주준을 대장으로 삼아 황건적을 토벌하게 한다.

 

주준은 손견을 좌군사마로 삼았는데 하비에서 손견을 따르던 자들은 모두 쫓아 출정하기를 바랬다. 손견은 주준의 휘하에서 싸웠는데 가는 길마다 적이 없어지고 적군은 쫓겨나 완성에 진을 치고 농성한다. 손견은 스스로 선봉이 되어 직접 성벽을 타고 올라가자 그의 병사들도 뒤를 따랐으며 마침내 성을 함락시키게 된다. 이 모습을 본 주준은 조정에 표를 올려 손견은 별부사마로 임명된다.

 

186(중평 3)에는 한수와 변장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온을 따라 토벌에 참전한다. 장온은 앞서 임무를 맡겨 성과가 오르지 않고 있던 동탁에게 경과를 보고 시키기 위해 사자를 보냈는데, 동탁이 장온에게 출두하지 않았다.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 동탁이 장온을 찾아왔는데 장온에게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였다. 이에 손견은 동탁을 처형할 것을 권하지만 장온은 동탁의 명성을 염려해 실행하지 못한다.

 

장온군은 대군으로 미양에서 크게 싸웠는데 고전을 거듭하였고 손견 역시 병력과 인수를 잃기도 하였다. 동탁이 반전하여 크게 깨뜨리고 유중으로 도망가는 반군을 탕구장군 주신이 3만명으로 쫓았는데, 동탁은 그 뒤를 지키려 했지만 장온은 출격을 명하였다. 손견은 반군의 보급로를 끊자고 주신에게 권하지만 주신은 듣지 않았고 역으로 한수와 변장이 보급선을 차단하니 주신은 퇴각하였다.

 

변장과 한수의 반란의 공으로 손견을 의랑으로 임명했는데 이무렵 장사의 도적 구성이 1만여명을 데리고 성읍을 에워싸고 공격한다. 또한 주조와 곽석이 영릉과 계양에서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구성과 서로 호응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손견을 장사태수로 임명하였는데 손견은 군사를 이끌고 한 달도 안되 반란군을 격파한다.

 

손견은 장사에 부임한 후 유능한 관리를 임명하고 그들에게 백성들을 너그럽게 대하고, 공문서는 바른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 체포한 도적을 멋대로 처형하지 말고 태수에게 호송 할 것을 엄명한다.

 

반동탁 연합군 이후

영제가 사망한 후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자 제후들은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연합군을 창설하는데 손견도 연합군에 합류한다. 손견은 북상하면서 형주자사 왕예가 평소 손견에게 무례하게 행동했으므로 손견은 지나가는 길에 왕예를 죽인다. 남양군에 이르러 수만명이 모였는데 남양태수 장자가 의용군에게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장자를 참수하고 그의 군세를 흡수한다.

 

손견은 노양현에서 원술과 만났는데 원술이 표를 올려 손견을 포로장군을 대신하게 하고 예주자사를 겸하게 하였는데 손견은 노양성에 주둔하게 된다. 손견은 노양에서 출진하기 전에 주연을 개최하고 있었는데 동탁은 군대를 보내 급습했지만 손견은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술자리를 끝내고 사람들을 인솔하여 성으로 들어갔다. 동탁의 군대는 손견군이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성을 공격해 보지도 못하고 퇴각한다.

 

손견은 부대를 옮겨 대량에 주둔하였는데 동탁의 대군에 포위 당해 궁지에 몰리게 된다. 손견은 수십 명의 기병과 함께 포위망을 돌파한다. 하지만 적이 여전히 추격하자 조무는 손견이 쓰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적의 눈을 속이는 사이 손견은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다. 손견은 군대를 정비해 양인에서 동탁군을 군대를 격파하고 도독 화웅을 죽인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관우가 죽이는 일화로 묘사된다.

 

이 때 어떤 사람이 원술에게 손견을 이간질 시켰는데 원술은 손견을 의심하여 군량미를 보내지 않았다. 이에 손견은 원술에게 달려가 참언에 대해 따지자 원술은 한마디 대꾸도 없이 바로 병량을 내보낸다. 동탁은 손견의 용맹을 두려워하여 이각을 보내 화친을 하고 일족에게 고관의 직위를 주어 자기편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손견은 거절하고 대곡으로 진군하자 동탁은 오래지 않아 수도를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된다. 손견은 동탁이 불태운 낙읍에 이르러 제왕들의 능묘를 보수하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 노양에서 머무른다. 여기에서 손견이 옥새를 손에 넣어 돌아갔다는 설이 있고 그러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확실한 내용은 책마다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192(초평 3) 원술은 손견을 시켜 형주를 정벌하게 하고 유표를 공격하게 한다. 유표는 황조를 보내 번성과 등성 사이에서 맞서 싸우지만 손견은 황조를 격파하고 한수를 거쳐 양양성을 포위하게 된다. 손견은 말을 타고 현산을 순시하는 도중 황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고 죽었다. 손견 사후 조카 손분은 병사들을 인솔하여 원슬을 의지하였고 원술은 표를 올려 손분을 예주 자사로 삼는다.

손견은 37세에 사망하였고 아들 손권이 후에 존호를 칭하고 시호를 무열황제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