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궁 공대 陳宮 公臺]
진궁의 자는 공대이며 동군 무양현 출신이다. 생년미상이나 198년에 사망한다. 진궁은 어려서부터 천하의 명인들과 친분을 맺어며, 강직하고 기개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조조를 섬기게 된다. [삼국지 정사]에서는 진궁이 어떻게 조조를 섬기게 되었는지 특별하게 나오지 않지만 [삼국지 연의]에서는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도망을 쳤는데 중모현을 지나가는 도중 현령이었던 진궁에게 체포된다. 조조의 뜻에 감탄한 진궁은 조조를 풀어주고 같이 도망가지만 여백사의 집에서 여백사의 일족을 잔인하게 죽인 조조의 모습에 실망하여 도망치는 모습으로 나온다.
192년 (초평 3년)에 청주에서 황건적이 쳐들어왔는데 연주자사 유대가 황건적에게 패해 사망하자 진궁은 연주를 거점으로 천하를 다스릴 것을 진언하고 주내의 별가나 치중들에게 조조를 맞아할 것을 설득하여 연주를 조조 밑에 귀속시킨다. 이 일로 조조는 연주자사가 된다.
194년 (흥평 원년) 조조가 대대적으로 서주의 도겸을 공격하러 가자 진궁은 장막의 동생 장초,허사,왕해 등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킨다. 진궁은 조조군의 제일의 참모임을 자부하고 있었는데 새롭게 온 순욱,정욱 등에게 밀려 질투하였고 서주에서 조조가 벌인 대량학살에 대해 실망하였다고 한다. 진궁은 반란을 일으키고 장막을 끌어들이는 한편 여포를 맞이하여 연주자사로 취임시킨다. 연주에서 동아,범,견성 세 곳을 제외한 모든 군과 현이 진궁에게 호응하였다.
조조는 소식을 듣고 긴급히 군사를 돌려 연주에서 여포와 2년간 사투를 벌였다. 조조는 거야에서 여포군을 격파하였다. 진궁이 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동민에서 싸웠지만 기습에 당해 크게 패한다. 여포가 도주하자 조조는 다시 공격하여 정도를 점령하고 군대를 나누어 여러현을 점령한다.여포와 진궁은 서주로 도망가 유비를 의지하게 된다. 진궁은 유비와 원술이 대치하였을 때 여포에게 하비성을 습격할 것을 권하여 서주를 장악한다.
196년 (건안 원년) 학맹이 원술과 내통해 여포를 배신했는데 진궁이 공모하고 있던 사실이 발각되었다. 여포는 불문에 부쳤다. 이후 조조는 대대적으로 서주에 여포를 공격하였는데 여포는 패배하여 198년 하비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되게 된다. 진궁은 “적이 멀리서 왔기 때문에 피곤한 적에게 맞써 싸워야 한다”고 했지만 여포는 농성을 택하였다. 이 때 조조는 여포에게 편지를 보내 항복할 것을 권유하였는데 여포는 항복하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진궁은 자신들이 지은 죄가 깊은 것을 생각하여 여포의 항복을 제지한다.
진궁은 여포에게 종종 책략을 내놓지만 여포는 진궁의 계획을 따르지 않았고 결국 후성,위속,송헌의 배신으로 진궁은 붙잡혔고 여포도 조조에게 붙잡혀 하비성은 함락 된다. 조조는 진궁에게 “이번의 패전은 어떻게 된 것인가?”라고 묻자 진궁은 “여포가 내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조조는 다시 진궁을 자신의 휘하에서 머물 것은 요구하였지만 진궁은 “군법을 확실하게 하라”고 거절하였다. 또한 조조가 진궁에게 노모와 딸의 생사를 어떻게 할지 묻자 진궁은 조조에게 “살고 죽는 것은 그대의 뜻에 달려있지 내 뜻에 달려있지 않다”라고 하였다.
조조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보내주고 진궁은 처형당한다. 진궁의 노모를 불러서 여생을 마칠 때까지 봉양해 주는 한편 딸도 시집을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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