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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칼럼

제갈량이 거절한 위연의 자오곡계책에 대한 진실 (2편) 위연의 자오곡계 주장 배경과 이유

제갈량이 거절한 위연의 자오곡계책에 대한 진실


(1편) 자오곡계란?

(2편) 위연의 자오곡계 주장 배경과 이유

(3편) 제갈량의 자오곡계 거절 배경과 이유




전편에서 자오곡계가 나오게 된 배경과 그 기본적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이번 편에서는 위연이 자오곡계를 주장했던 배경과 이유에 대해 다룰 예정으로 자오곡계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들이 과연 승산이 있었는지, 또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중점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 장안 수비를 맡던 하후무에 대한 위연의 평가는 타당한가?


『하후무(夏侯楙)가 안서장군으로 임명되어 장안 수비를 맡았다. 


제갈양이 남정(南鄭)에서 부하들과 전략을 논의할 때, 위연은 이렇게 말했다. 


"듣자하니 하후무는 조조의 사위인데 아직 젊고 겁쟁이며 지모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저에게 정예 5천명과 식량 5천 석을 주신다면, 곧장 포중(褒中)을 뚫고 나가 진령산(秦嶺山)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자오곡(子午谷)에 당도하여 북쪽으로 갈것이니 열흘이 지나지 않아 장안에 당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후무는 저 위연이 기습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틀림없이 배를 타고 도주할 것입니다. 


장안성 안에는 단지 어사와 경조태수만이 있을 뿐이므로, 횡문(橫門)에 있는 식량 저장 창고와 흩어지는 백성들의 곡물로 군사의 식량은 충분할 것입니다. 


동쪽(위)이 병력을 모으는 데는 20일은 걸릴 것이므로 공이 사곡(斜谷)을 뚫고 나오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한 번의 행동으로 함양(咸陽) 서쪽 지역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은 이것을 위험한 계책이라고 판단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 위략 中 - 


위연은 자오곡계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장안의 수비를 맡고있던 하후무가 도주할 것이라 예상할 정도로 낮게 평가하였으며, 이를 장안 기습의 성공 이유 중 하나로 보았다.


도주까지 언급했지만 만약 도주하지 않는다 해도 장안 함락에 있어서 큰 방해요소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인 이러한 위연의 평가는 단순히 만용에 의한 근거없는 폄하였을까?


위연은 유비에 의해 219년 독한중(督漢中)에 발탁된 이후 최전방인 한중에 머물며 한중 방어를 담당해 왔으며, 북벌 당시에는 그 직위가 독전부(督前部), 영(領) 승상 사마(丞相司馬), 양주자사(涼州刺史)에 이르렀다.


위나라의 장안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던 한중 방어 담당을 오랫동안 역임해온 위연은 장안에 대한 첩보나 세작들이 보내오는 정보들에 밝았을 것이고 이는 위연의 자오곡계 발언 속에서도 엿볼 수 있는 부분으로 하후무에 대한 평가를 하는 부분에서 대뜸 하후무는 무능하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닌 들은 바에 의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횡문에 위치한 식량 저장 창고에 대한 언급 등을 통해 사전에 이미 장안성에 관련된 필요 정보를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고 수비를 담당하는 하후무에 대한 평가 또한 여러 정보들을 바탕으로 내린 평가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위략에는 하후무라는 인물에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으며 위연의 평가와 부합된다.


『하후무의 자는 자림(子林)으로 하후돈의 둘째 아들이다. 

문제 조비와는 어렸을 때 부터 친밀한 사이였으며, 문제가 황제에 오르자 안서장군(安西將軍)이 되어 하후연의 뒤를 이어 관중을 관리했으나 태어나면서부터 무략(武略)이 없었으며, 그가 관중에 있을 때 많은 기녀와 시첩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청하공주(靑河公主)와 불화가 생기기도 했다.』 - 위략 中 -


이렇듯 위연의 하후무에 대한 평가는 근거없는 개인적 판단이 아닌 오랜 기간 독한중을 지내며 입수한 장안에 대한 정보와 첩보들에 기반한 객관적인 평가였음을 알 수 있다.


덧붙여 도주할 것이라 예상한 부분에 대해서는 하후무 개인에 대한 능력적인 부분 뿐 아니라 장안성의 규모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는데 이는 5천의 별동대가 장안성을 함락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자세히 언급 하도록 하겠다. 




▶ 위연의 말대로 열흘 내 자오곡을 통과해 장안에 당도할 수 있는가?

 

자오곡계의 핵심은 기습으로 위연의 별동대가 적군이 알아채기 전, 그리고 위나라의 원군이 오기 전 최대한 빠르게 장안에 당도해야만 했다.


험준한 자오도를 지나 장안까지 열흘 내로 당도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가능은 하다.' 이다.


자오도의 거리는 660리(진서 지리지 기준)로 진(秦)나라 기준인 1리 576m를 적용시켜 보면 약 380km가 된다.


일반 육군의 완전군장 40km 행군의 일정이 늦어도 12시간 이내로 완료되며, 특전사들이 하는 400km 천리행군이 험준한 산들을 이동하며 열흘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당시의 병사들의 복장을 고려하면 갑옷과 무기는 둘째치더라도 천, 가죽 신으로 평지도 아닌 산악지대를 저런 강행군으로 장안에 당도 했다하더라도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부분으로 위연은 기습 소식을 들은 하후무를 포함한 장안 성 내 위나라 군사들이 제대로 싸우지 않고 성을 포기하고 도주하거나 투항하는 것과 같이 전면적인 전투는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 전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 5천의 별동대로 장안성의 함락이 가능한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위연은 전면적인 전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기습은 그 자체의 전투력이 아닌 상대가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혼란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험준한데다 신속하게 통과해야 하는 자오도를 공성병기까지 대동하여 이동하였을리는 없으므로 장안성을 정공법으로 공략 할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으로 일부 병사들을 잠입시켜 안팎으로 호응하거나 야습 등을 통해 여러 성문 중 하나만 돌파하더라도 장안 성 내 문관과 소수의 병력만 남아있을 것이므로 겁쟁이에 지략 또한 없는 하후무는 분명 도주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위연의 기본적인 장안 공략 핵심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더욱이 여기에는 장안성 자체의 규모적인 특징도 한몫을 하는데, 장안성은 동편이 6km, 서편이 5km, 남편이 7.5km, 북편이 7km의 총 둘레 약 25.5km의 매우 거대한 성으로 장안성 자체가 워낙 넓고 사방에 출입할 수 있는 문 또한 많아 제갈량의 본대를 막기 위해 이미 병력이 빠져나가있는 장안의 적은 병력으로는 그 넓은 장안을 모두 방어하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물론 위연이 실제로 어떤 방법으로 장안을 기습할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장안 현지에서의 군량 조달 및 이후의 동관 수비 전략까지 염두해 두었다면 아무런 전략적 준비 없이 하후무의 도주만을 가정하고 무작정 출병하겠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 장안 공략 성공 이후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


위연이 장안 공략에 성공했다고 가정할 경우 제갈량의 본대와 대치중인 위나라의 군세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전쟁에 있어 후방이 막혀 앞뒤로 적을 맞이하게 되거나 본진의 함락은 병사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주지만 그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움직임을 봉쇄당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한정됨에 있다.

촉군과 장안을 등진 위군의 군세가 대등하다고 가정하고 화살표의 크기를 군세, 사격형을 장안이라고 하면, 

위군은 장안 본성으로 부터 안정적으로 물자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촉군은 본대의 일부를 분리하여 별동대로 위군의 후위를 공격하려 하여도 장안에서 출전하는 병력에 앞뒤로 포위되어 별동대가 격파될 경우의 수를 간과할 수 없으므로 병력을 분산 운용하기 어려운 데다가 만약 분산 운용이 실패할 경우 여세를 몰아 본대까지 위군에게 뚫릴 위험 부담이 있다.


또한 위군은 전황이 불리하다 판단되면 장안으로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고 지원군을 기다리며 농성을 하는 방법을 택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장안이 촉에게 함락되면 오히려 위군이 퇴로와 물자지원도 끊긴채 앞뒤로 적을 대비해야 되어 군세를 한쪽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위군이 장안을 다시 수복하려 회군한다면 제갈량의 본대에게 뒤를 물리게 되는 형국이 되므로 장안을 수비하는 촉군이 비록 적은 수라 할지라도 군을 섣불리 움직일 수 도 없는 것이었다. 


5천의 군사로 장안 공략이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언급했지만 장안은 소수의 병력으로 방어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성으로 5천의 별동대 만으로 방어할 수 있는 성이 아니다.


위연은 제갈량의 본대와 대치중인 위군이 장안 탈환을 위해 함부로 움직이기 힘들 것이라는 것까지 고려했을것이다.  


물론 이는 제갈량의 본대와 장안에서 출병한 위군세가 대등할 경우로 이야기 한 것으로 실제 1차 북벌 당시에는 촉의 공격에 전혀 대비되어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제갈량 본대와 대치할 위군 군세보다는 촉군의 군세가 훨씬 우세한 상황이었고 장안이 함락되면 제갈량과 대치중인 위군 또한 불리해 지는 것은 분명하였다.


위연 또한 이를 알고있었기에 제갈량이 위 군세를 물리치고 장안에 무사히 합류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으로 장안에서 군량을 조달한 후 수비하기 어려운 장안이 아닌 장안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동관을 기점으로 삼아 적을 맞이 하고자 했다.


동관은 장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임과 동시에 대군을 맞아 적은 병력으로도 수비가 용이한 전략적 요충지로 얼마나 신속히 동관에서 방비 태세를 갖출지가 사실상 자오곡계의 최종적인 과제였던 것이다.



제갈량의 기산진출이 농서지역을 확보한 후 가정을 전략 기점으로 관중일대를 공략하는 계책이었다면 위연의 자오곡계는 장안과 동관을 전략 기점으로 함양 서쪽을 공략하는 계책으로 최종적으로 동관에서 위군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북벌에 상당한 힘을 실어줬을 전략이었다.




위연의 자오곡 계책은 실제로 변수에 상당히 취약한 계책으로 


- 별동대가 자오곡 통과 전 발각되거나 

- 장안 수비군의 거센 저항으로 공략 타이밍을 놓치거나

- 촉 본대와 대치중인 위군이 조금 더 오래 버티거나 

- 위의 지원군이 급속행군으로 동관을 먼저 통과하는 등


비록 여러 도박적 우려가 있는 계책이긴 했으나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단순히 필부의 만용으로 공명심 때문에 주장한 근거없는 계책은 아니었다.


위연은 촉의 장군으로써 촉과 위의 국력 차이를 고려해 시간을 끌수록 성공 여부가 어두웠던 북벌에 그나마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다소 도박적이지만 해볼만하다고 생각한 최선의 계책을 내놓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