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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8. 조식 자건

[조식 자건 曹植 子建]

 

조식의 자는 자건이다. 조조의 4남으로 변황후의 세번 째 아들이며 패국 초현 출신이다. 192년에 태어나 232년에 사망한다. 조식은 10세 무렵에 [시경],[논어],[초사]등을 비롯해 사부 10만자를 암송하고 읽었으며 문장을 짓는데 뛰어났다. 조조는 어느날 조식의 문장을 보고 대필한 것이 아니냐라고 묻자 조식은 제가 말을 하면 의론이 되고 붓을 휘두르면 문장이 이루어 집니다. 눈 앞에서 해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 것을 대신 짓게 하겠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당시 업성에 동작대가 막 완공되어 조조가 여러 아들들을 동작대로 올라가 가서 시무를 짓게 하였는데 조식이 붓을 쥐고 한번 휘둘러 완서했는데. 그 작품이 자식들 중 가장 뛰어나 조조도 그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였다.

 

조조는 조식의 재능을 아껴 후계로 세우려고도 하였지만, 정의,정이,양수등의 뛰어난 문인파 고간의 보좌관이 있었음에도 자유분방한 행동과 술에 절도가 없었기 때문에 후계자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조비가 후계자가 된다.

 

211 (건안 16) 평원후에 봉해지고 이어 214년에는 임치후로 봉해졌다. 217년에는 식읍이 5000호가 늘어 이전 것과 모두 더해 1만호가 되었다. 조식이 일찍이 수레를 탔는데, 황제만이 가는 길을 통해 사마문을 열고 나갔다. 조조는 매우 노해 궁문을 관리 하는 공거령을 사형에 처했고, 이 일로 제후들에 대한 법령이 더욱 엄해졌다. 조식의 총애는 나날로 줄어들었으며, 조조는 조식의 세력이 너무 커져서 후환이 될 것을 걱정하였다.

 

214 (건안 24) 조인이 관우에게 번성에서 포위당하자 조조는 조식을 남중랑장에 임명하고 정로장군을 대행하게 하였지만, 조식이 술에 취해 명을 받지 못했다. 이 일로 조조는 조식에 관직을 모두 박탈했다.

 

조조가 사망하고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조비는 조식의 측근 정의,정이 형제를 처벌하고 조식도 죽게 될 운명에 처했지만 모친인 변황후의 주선으로 죽음만은 면하게 되고 안향후로 격하되어 유배 된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조비가 조식에게 일곱 발자국을 걷는 동안 시를 지으라 한다. 그는 형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시를 지어 처형을 면하는 것으로 나온다.

 

조식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영지를 교체 당하고 종종 상소를 올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232 (태화 6)에 근심과 번민속에 사망하고 만다.

 

조식은 애수에 찬 시를 많이 남겨 아버지 조조와 형 조비와 삼조라 일컬어지며 건안 문학의 기초를 쌓았고, 또한 후세사람들에 의해 조비의 부인이였던 견씨에게 그리움을 품었다는 낙신부라는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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