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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9. 교현 공조

[교현 공조 橋玄 公祖]

 

교현의 자는 공조이고 양국 휴양현 출신이다. 109년에 태어나 183년에 사망한다. 교현은 내외직을 역임하였다. 젊어서 현의 공조가 되었는데, 당시 예주자사였던 주경이 양국에 이르렀을 때 교현은 주경을 만나 땅에 엎드려 진상 양창의 죄를 아뢰고 자신을 진국의 종사로 임명하여 감찰할 것을 청하였다. 주경은 교현의 결의를 높이 사서 진국종사로 파견하고, 교현은 양창의 빈객을 가두어 심판하였다. 대장군 양기는 평소에 양창과 친분이 있었는데 교현을 소환하려 하였으나 교현은 문초를 더욱 엄증히 하고는 양창을 함거에 태워 낙양으로 보냈다. 이 일로 교현은 명성을 떨쳤고, 이후에도 엄정하고 공명했으며, 강직과단한 인물로 평판이 자자했었다.

 

이후 효렴으로 천거되고, 낙양좌위가 되었다. 승진하에 제상이 되었으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노역형을 받았으며, 형기 후에는 다시 초빙되어 상곡태수가 되었다. 이어서 한양태수가 되었는데 재임 시에 상규령 황보정을 뇌물 수수죄로 벌하기도 하였다.

 

교현은 군의 명사인 강기를 초빙하려 하였으나, 강기가 병을 칭하여 응하지 않자 이에 노하여 독우 윤익을 보내 협박하였다. 윤익은 반대하였으나 교현은 듣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윤익은 급히 가서 강기를 데려오라 하였다. 그러나 강기는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고 군의 사대부들 또한 간하였으므로 교현은 마침내 포기 하였다. 이 일로 교현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교현은 병으로 사임하고 물러났다가, 다시 공거로 부름을 받아 사도장사가 된 후 장작대장에 임명된다. 환제 말기에 대장군과 삼공부의 천거로 도료장군으로 임명되고, 교현은 임지에 이르러 병사를 충분히 쉬게 한 다음 고구려의 백고등을 무찌르는등 3년 재임하는 동안 변경은 안정되었다.

 

영제 대에 이르러서는 하남윤이 되고, 이후 구경,삼공을 역임하였으며, 178 (광화 원년)에는 태위까지 이르렀다.

 

교현은 인물을 파악하는데 뛰어나 조조에게 천하는 참으로 어지럽다. 일세를 풍미할 재능이 없다면 구제하기 어렵다, 난세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자네 뿐이라 말하며 남양의 하옹과 함께 젊은 조조를 높게 평가하였다. 또한 천하의 명사를 많이 만났지만 자네와 같은 자는 처음이다. 나는 이미 늙었다. 처자를 잘 부탁한다라고 말해 조조의 명성이 높아졌다. 생활이 청렴하여 죽을 때 장례 비용이 없어 조조가 교현의 제사를 지낼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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