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 문약 韓遂 文約]
한수의 자는 문약이며, 출신지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146년에 태어나 215년에 사망한다. 후한 말 군벌 중 한사람으로 서쪽 주에서 이름이 높아 강족이나 흉노와 같은 이민족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처음에 계리로 낙양에 부임하지만 대장군 하진에게 환관들을 주살하자고 권하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자 귀향한다.
변장, 한수의 난
184년 (광화 7년)에 양주에서 서량의 강족이 반란을 일으켜 호족인 북궁백옥과 이문후,송양,송건,왕국등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들은 금성군을 쉽게 함락시키기 위해 변장과 한수를 끌어들여 겁박하여 거병해서 난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변장,한수의 난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호강교위 영징과 금성태수 진의를 죽였다고 한다.
185년 (중평 2년)에 조정에서는 사공 장온을 거기장군으로 삼고 토벌하게 하였는데, 당시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한 동탁이 반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자 한수와 변장은 유중으로 달아났다. 장온은 탕구장군 주신에게 이들을 쫓게 했다. 주신의 부장이었던 손견은 반란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자고 하였으나, 주신은 듣지 않고 유중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한수와 변장은 역으로 토벌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주신을 물러나게 하였다.
이후 한수는 변장, 북궁백옥, 이문후 등을 모두 죽이고 187년에 10만 명을 거느려 농서를 공격하였고, 농서태수 이상여는 한수에게 항복을 하였다. 양주자사 경비는 한수를 토벌하려 하였으나 적도에서 부하에게 배반 당해 죽었고, 한수는 한양 태수 부섭과 싸워 그를 죽였다.
한수에 세력이 커지자 경비의 부장이었던 마등은 한수에게 가담하여 적도 사람 왕국을 주군으로 추대하였다. 188년 11월 한수와 마등이 주군으로 추대한 왕국이 진창을 포위하자 조정에서는 황보숭과 동탁에게 4만의 군사를 주어 토벌하게 한다. 황보숭과 동탁의 지위는 같았으나 주장으로는 황보숭, 부장으로는 동탁이 되자 동탁은 이를 엄청난 치욕으로 생각했다. 황보숭과 동탁의 의견이 자주 부딪혀 둘의 사이가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결국엔 반란군을 상대로 승리하자 한수는 왕국을 참수하여 머리와 몸을 멀리 이격 시켜버렸다. 이후 반란군의 인물들이 서로 다투다 내부 분열로 와해된다.
이각 VS 마등,한수
192년 (초평 3년)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 당하고 이각과 곽사가 여포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한수는 마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들어가 진서장군에 임명되어 금성에 주둔하게 된다. 이후 194년에 마등이 이각에게 식량을 지원해 달라 하였지만 거절당하자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려 했다. 한수는 마등과 이각을 중재하려 하였으나, 나중에는 같이 합류하여 장안을 공격한다.
조정 신하들이 장안성에서 내응하겠다 하였지만, 이각이 곽사와 번조와 조카 이리를 보내 서량군을 공격하자 한수와 마등은 서량으로 돌아갔다. 퇴각 중 한수를 뒤쫓던 번조에게 동향이라는 이유로 설득시켜 돌아갈 수 있게 부탁하자 번조는 한수의 부탁을 들어주고 장안으로 돌아갔지만 이각에게 의심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각은 장안에서 내응한 조정 신하들을 죽이고 조정을 움직여 한수와 마등을 사면하는 조서를 내리고 한수를 안향장군으로 삼고 마등을 안적장군으로 삼았다.
한수와 마등의 대립
이전에 마등과 한수는 처음에는 친하게 지내 의형제로 지냈지만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자주 부딪혔다고 한다. 이각에게 패배한 후 양주로 돌아온 후에 이 둘의 사이는 곧 벌어져 마등은 한수를 공격했다. 한수는 도망갔지만 다시 돌아와 마등의 처자를 죽였다. 200년 사례교위 종요가 양주목 위단과 함께 한수와 마등을 설득하여 화해하게 하였다. 두 사람은 각각 자신들의 자식을 인질로 삼고 황제가 있는 궁궐로 돌아간다.
동관 전투
211년 (건안 16년) 조조가 종요와 하후연을 파견하여 한중의 장로를 토벌하려 했다. 이 때 고유와 장기가 이 행동이 한수,마초 등 관중 군벌들의 의혹을 사 모반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하여 반대했지만, 조조는 듣지 않고 한중을 정벌 했으며, 이에 한수, 마초는 한중 정벌 소식을 듣고 거병을 하게 된다.
마초는 아버지 마등의 의형제인 한수와 그의 8부 군마인 후선,정은,이감,장횡,양흥,성의,마완,양추 등과 함께 20만 대군을 이끌고 장안 태수 종요와 그의 동생 종진을 무찌르고 장안성을 함락 시킨다. 조조는 군사를 물려 동관에 조홍과 서황을 보내 지키게 하지만, 마초는 조홍을 도발하여 성 밖으로 끌어낸 뒤 협공을 하여 동관을 함락시킨다.
이후 조조와 몇 차례 접전이 있었고 조조는 지구전이 유리하다고 판단 하였고 서량의 군사 2만이 합류하여 조조에게 가자 조조는 동관의 후방의 방비가 허술해졌다 생각하고 공격하였지만, 이 계획을 눈치 챈 마초에게 급습을 당하고 조조는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간다.
계속 패배 당하는 조조는 마초와 한수를 이간시키기 위해 한수와 만난 자리에서 옛 일만을 이야기 하고 전쟁에 관한 내용은 말하지 않은 체 돌아간다. 마초가 대화내용을 묻자 사실대로 대답했지만 이때부터 마초가 한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조조는 이번에 일부로 많은 부분을 고쳐 쓴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를 본 마초는 한수가 조조와 내통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보낸 것이라 의심하며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이 기회를 잡은 조조의 기습으로 서량군은 와해 되고 마초와 한수는 서량으로 달아난다. 이 과정에서 조조는 업성에 있던 마등과 마등의 삼족을 멸하였다.
동관 전투 이후
동관 전투 이후 214년 한수는 현친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하후연의 공격으로 도망갔다. 이후 하후연이 한수의 군사들 가족이 있는 장리의 강족을 공격하자 한수를 군사를 보내 강족을 돕게 했지만, 하후연은 이들을 격파하고 저족 까지 항복시켰다. 215년 상황이 불리해지자 한수는 서평,금성 지방에 국연과 장석에게 습격받아 목이 잘려 조조에게 보내졌고 당시 나이 70세 였다고 한다.
삼국지 연의에서의 한수
[삼국지 연의]에서는 서량군이 이각을 공격한 것은 헌제에 밀조를 받아서라는 이야기로 나오며, 동관전투에서는 마초가 자신을 의심하자 한수는 조조에게 귀부하여 부하 장수들과 마초를 죽일 것을 논의했지만 마초에게 발각되어 왼팔이 잘려 도망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후 연의에서는 한수를 서량후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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