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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115. 순유 공달

[순유 공달 荀攸 公達]

 

순유의 자는 공달이며 영천군 영음현 출신이다. 157년에 태어나 214년에 사망한다. 순유는 순욱의 조카이고 조부 순담은 광릉태수를 지냈다. 아버지 순의는 주의 종사로 있었는데 순유가 어릴 때 사망하였다.

 

순유가 8살 때 숙부 순구가 술에 취해서 순유의 귀에 상처를 낸 적이 있다. 순유는 숙부의 방을 들어갔다 나갔다 할 때 언제나 귀를 숨기고 숙부의 눈에 띄지 않으려 하였다. 숙부는 이 일을 뒤늦게 알고 순유에게 사과하였고 순유를 높이 평가하였다.

 

순유가 13살 때에는 조부 순담이 사망하였는데 순담의 옛 부하였던 장권이 순담의 묘를 지키기를 원하였다. 순욱은 이 일을 이상히 여거 순구에게 장권이 무슨일을 꾸미는 듯하다고 이야기 하였는데 순구가 다그쳐 물으니 장권은 살인을 하고 도망친 자였다. 이 일로 순구는 순유를 더 높이 평가하게 된다.

 

대장군 하진이 정권을 잡았을 때 순유는 조정으로 들어가 황문시랑으로 임명되었다. 동탁이 정권을 잡은 후 연합군이 결성되자 동탁은 도읍을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하였는데 동탁의 횡포의 의랑 정태, 하옹, 시중 충집, 월기교위 오경 등과 동탁을 제거하려고 모의를 하였다. 하지만 발각이 되어 하옹과 순유는 체포되었는데 하옹은 근심과 두려움에 자살하였으나 순유는 언제나 태연자약 하였다. 때마침 정변이 일어나 동탁이 살해되자 순유는 풀려났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순유는 공부에 초빙되고 임성의 상으로 승진했지만 거절했으며 촉군태수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길이 끊어져 가지 못하고 형주에 머물게 되었다. 조조가 헌제를 영접하여 허창에 도읍을 옮기고 순유를 불러 여남태수로 임명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정으로 불러 상서에 임명하였고 조조는 순유와 대화를 해본 후 크게 기뻐하며 군사로 삼았다.

 

198 (건안 3)에 조조가 장수를 정벌할 때 따라갔으며 순유는장수가 유표에게 걸식하고 있는 처지라 식량 공급을 계속해주지 않을 테니 출병을 늦춘다면 유표가 장수를 돕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진언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장수의 군대와 싸웠는데 유표의 원군이 오는 바람에 조조의 형세가 불리해졌다. 조조는 순유의 계책을 받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순유는 여포를 하비성에 포위하였을 때 조조는 병사들이 피로에 지쳐 귀환하려 하였다. 하지만 순유와 곽가는 만류하고 이 말을 들은 조조는 기수와 사수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하비성에 흘러들어가게 하여 여포를 사로잡았다.

 

관도전투에서는 백마에서 유연을 구해내고 원소의 군대를 분산시키는 책략을 내어 안량을 참수하는데 기여하였다. 연진에서는 치중대를 미끼로 하여 덫에 걸린 문추를 토벌하였다. 조조는 순유의 진언에 따라 사환과 서황을 보내 원소의 부하인 한맹의 치중대를 기습공격 하여 치중을 불태우기도 했다. 허유가 항복해왔을 때 순우경이 지키고 있는 군량고를 기습할 것을 진언하였는데 조조의 다른 모사들은 모두 의심하였지만 순유와 가후만이 허유의 계책을 받아들이라 권하였다. 순유는 조홍과 함께 관도성을 지켰고 조조는 별동대를 이끌고 순우경을 격파하였다. 장합과 고람이 궁지에 몰려 투항하려 할 때 조홍은 의심하여 받아들이지 못하였는데 순유는 조홍을 설득하여 투항을 받아들인다.

 

202(건안 7)에 순유는 조조를 따라 원담과 원상을 토벌하기 위해 여양으로 진군하였고 203년에 조조가 유표를 토벌하였을 때 원담과 원상이 기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다. 원담은 신비를 보내 항복을 요청하였고 조조는 허락하였다. 신하들은 원상과 원담이 싸우게 놔두고 유표를 공격할 것을 진언하였지만 순유는 원씨일가를 공격할 것을 진언하였다. 조조는 순유의 진언에 따라 원담과 손을 잡고 원상을 격파하였다. 후에 원담이 모반하였지만 순유는 대군을 따라 남피에서 원담을 격파하였고 기주가 평정된 후에 능수정후에 봉해진다.

 

207 (건안 12) 순유는 중군사가 되었다가. 위나라가 처음 건국되었을 때 상서령에 임명 된다. 조조는 항상 순유에게 겉모양은 우둔하지만 내면은 지혜롭고, 겉으로는 겁이 많으나 속으로는 용감하며,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공적을 내세우지도 않소. 그의 지혜는 도달할 수 있지만 겉으로 우둔한 척하는 지혜에는 도달할 수 없으니, 비록 안자나 영무조차도 순유를 능가할 수 없소라고 평하였다.

 

순유는 조조를 수행하여 손권을 정벌하러 가는 도중에 사망하였다. 조조는 순유가 사망하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순유의 장남 순집이 일찍 세상을 떠났고, 차남 순적이 후사를 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사망하여 대가 끊겼다. 황초연간에 순유의 손자 순표가 후계를 이었으며 순유의 시호를 경후로 추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