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도 승제 公孫度 升濟]
공손도의 자는 승제이며 요동군 양평현 출신이다. 생년은 미상이나 204년에 사망한다. 부친 공손연이 관리의 추적을 피해서 현도군에 갔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현도군에서 말단 벼슬아치가 되었다. 당시 요동태수는 공손역이었는데 그의 아들 공손표가 8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공손역은 공손도의 어린시절 이름이 표인 것을 알고 친자식처럼 대해주었다. 공손역은 공손도를 스승에게 보내어 학문을 닦도록 하였고 아내를 얻어 주었다.
공손도는 후일 유도로 천거되어 상서랑으로 임명되었다가 후에 기주자사로 승진하였는데 터무니 없는 소문으로 인해 파직당했다. 동탁이 조정을 장악했을 때 서영이 중랑장으로 있었는데 공손도와 같은 군 출신이라 동탁에게 추천하여 요동태수로 임명되었다.
공손도는 현도군 말단관리에서 시작해 집안을 일으켰는데 요동군 사람들에게 경시당하였다. 이보다 앞서 요동속국의 공손소가 양평현의 영으로 있었을 때 공손도의 아들 공손강을 불러 오장으로 임명하였다. 공손도는 요동태수로 부임하고 공손소를 체포하여 양평현 시장에서 그를 때려 죽였다. 요동군 내에 이름난 호족이자 몀문가인 전소등은 오랫동안 우대를 받았지만 은혜를 갚을 줄 몰라 법에 따라 처형하였다. 이 때문에 대가 끊기고 멸문지화 당한 집이 100여가구에 이르러 군 전체가 놀라고 두려워 하였다. 공손도는 동쪽으로는 고구려를 공격하고 서쪽으로는 오환을 공격하여 위세가 해외까지 이르렀다.
190년 (초평 원년) 공손도는 천하가 혼란스러운 것을 알고 왕업을 도모하려 하였다. 그는 요동군을 요서군과 중료군으로 나누고 그 곳에 태수를 두는 한편 동래군의 여러현을 정복하고 영주자사를 두었다. 그리고 자신을 요동후, 평주목이라 칭하고 부친 공손연을 건의후로 봉하였다. 공손도는 한나라의 두 선조의 제묘를 세우고 단과 선을 양평현 성남에 설치하여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며 적전 의식을 행하고 열병식을 하였다. 난거에 올라 구류를 이요ㅕㅇ하고 정두를 사용하는 우림기에게 호위를 받았다.
조조가 상주하여 공손도를 무위장군으로 임명하고 영녕향후로 봉하자 공손도는 “나는 요동에서 왕 노릇을 할 뿐인데 무엇 때문에 영녕향후가 되겠는가”라고 말하며 인수를 무기 창고에 감추었다. 204년 공손도가 사망하고 장남 공손강이 자리를 이었으며 차남 공손공이 영녕향후에 임명되었다.
'역사 > 삼국지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인물 116. 원유 백업 (0) | 2016.02.13 |
---|---|
삼국지 인물 115. 순유 공달 (0) | 2016.02.13 |
삼국지 인물 113. 장양 치숙 (0) | 2016.02.12 |
삼국지 인물 112. 교모 원위 (0) | 2016.02.12 |
삼국지 인물 111. 왕광 공절 (0) | 2016.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