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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208. 장료 문원

[장료 문원 張遼 文遠]

 

 

장료의 자는 문원이고 안문군 마읍현 출신이다. 169년에 태어나 222년에 사망한다. 본래 전한 때 흉노 정벌의 공을 세운 섭일의 후예인데 흉노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성을 바꾸었다. 젊어서 군리가 되었고 후한 말에 병주 자사 정원이 장료의 무예와 힘이 다른 사람을 뛰어 넘는 것을 보고 불러서 종사로 삼아 병사를 이끌고 수도로 가도록 했다. 하진이 또 그를 하북으로 보내 병사를 모집하도록 하니 1000 여명이 모였다. 수도로 돌아왔을 때 하진이 환관에게 살해당했으므로 장료는 군사들을 이끌고 동탁에게 귀의하였다.

 

동탁 사후에 병사를 이끌고 여포에게 귀의하여 기도위로 승진하였다. 이각, 곽사의 공격으로 여포가 패배하자 장료는 여포를 따라 동쪽으로 달아났다. 여포가 연주를 평정하였을 때에 기록은 없으나 후에 여포가 서주를 장악하였을 때 노국의 상으로 임명되었다. 조조가 하비에서 여포를 격파하자 장료는 병사들을 이끌고 조조에게 투항해 중랑장의 관직을 받았고 관내후의 직위를 받았다. 싸움에서 여러 번 공을 세워 비장군으로 승진한다.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할 때 백마에서 관우와 함께 출진해 안량을 격파하는 등의 공을 세웠으며 원소를 무찌른 후에는 노국의 각현을 평정하였다. 하후연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창희를 포위하였는데 창희는 항복하였다. 장료는 조조를 따라 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중견장군을 대행하게 되었다. 조조를 따라 업성으로 가 원상을 공격하였는데 원상이 견고하게 지키고 있어 공략하지 못하고 허현으로 돌아간다. 장료와 악진을 보내 음안을 공격하여 그 곳의 백성들을 황하 남쪽으로 옮기도록했다.

 

조조를 따라 업성을 다시 공격하여 격파하고 병사들을 인솔하여 조국, 상산군을 점령하며 산을 따라 노략질을 일삼는 도적과 흑산적 손경 등을 불러 투항하도록 하였다. 조조를 따라 남피에서 원담을 격파하고 병사를 이끌고 해안 지대를 공략하며 요동의 도적 유의 등을 격파했다. 장료가 업성으로 돌아오자 조조는 친히 나와 맞이하며 그와 함께 수레를 탔으며 탕구장군에 임명하였다. 따로 형주를 공격하여 강하의 여러 현을 평정하고 군사를 돌려 임영에 주둔하니 도정후에 봉해졌다. 조조를 따라 유성에 가서 원상을 정벌하는데 갑자기 적과 마주친 장료는 의기가 격양되어 조조에게 싸울 것을 권했다. 조조는 그의 용맹함을 칭찬하고 사용하던 큰 기를 보내 주었다. 장료는 원상을 공격하여 크게 이기고 선우 답돈의 머리를 베었다.

 

당시 형주는 아직 평정되지 않아 조조는 장료를 보내 장사에 주둔하도록 했다. 출발하려 할 때 어떤 자가 모반을 하여 밤사이에 불을 질렀으므로 군영 안은 혼란했고 병사들은 불안해했다. 장료는 병사들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군중에 명령을 내려 모반하지 않은 자들은 편안히 앉아있으라 하였다. 그런 다음 친히 병사 수십 명을 이끌고 군영 중앙에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이 평정되었고 모반을 주동한 자를 붙잡아 목을 베었다.

 

진란, 매성이 저족의 거주지인 여섯 현에 의지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조조는 우금, 장패 등을 보내 매성을 토벌했고 장료는 장합, 우개 등을 감독하여 진란을 토벌했다. 그런데 매성이 거짓으로 투항하자 우금은 믿고 돌아갔는데 얼마 후 매성은 부하들을 인솔하여 진란에게 달려가 첨산으로 들어갔다. 첨산에는 높이가 20여 리나 되는 천주산이 있었는데 길이 좁고 험난하여 걸어서만 통과할 수 있었다. 진란 등은 산 위에 진영을 설치하였다. 장료가 나아가 공격하려하자 여러 장수들은 길이 좁아 곤란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장료는 이 것은 일대일 전투이기 때문에 용맹한 사람만 있으면 승리할 수 있다하고 산 아래로 진군하여 진영을 공격하여 진란과 매성을 죽이니 그들의 부하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다.

 

조조가 손권을 정벌하고 돌아온 후 장료와 악진, 이전에게 7000여명을 인솔하여 합비에 주둔하도록 하였다.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토벌하면서 호군 설제에게 교지를 주어 겉봉에 적이 오면 뜯어 보라고 써놓았다. 오래지 않아 손권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합비를 포위하여 교지를 뜯었는데 교지에는 만일 손권이 오면 장료와 이전 장군은 나가 싸우고 악진 장군은 성을 지키며 호군 설제는 싸움에 참가하지 말라라고 써있었다. 여러 장수들은 모두 의심스러웠지만 장료는 조공이 원장을 갔으니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면 적은 반드시 우리를 무찌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라고 하며 의심을 풀었다.

 

이전도 장료와 의견이 같았고 그래서 장료는 밤에 용기 있는 병사들을 모아 800명을 얻어 소를 죽여 장수들에게 상으로 죽어 다음 날 있을 큰 싸움에 대비했다. 날이 밝을 무렵 장료는 갑옷을 입고 긴 화극을 갖고 먼저 적진으로 들어가 적 수십 명을 죽이고 장수 두 명의 목을 베고는 큰 소리로 자기 이름을 외치며 적의 진영을 뚫고 들어가 손권의 큰 깃발 아래 도착했다. 손권은 매우 놀랐고 사람들은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고 물러나 작은 산으로 올라갔으며 장료는 긴 화극으로 스스로를 지켰다. 장료는 맞서 싸우지 않는 손권을 질타하였으나 손권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장료가 이끄는 병사가 적은 것만을 관망하다가 병사를 집결시켜 장료를 몇 겹으로 포위했다. 장료가 좌우로 맹렬히 적을 공격하여 포위망을 뚫고 부하 스십 명을 인솔하여 나가려는데 남아 있던 병사들이 장군! 우리를 버리지 마십시오!”라고 외쳤다. 그러자 장료는 또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남아 있던 병사들을 구출하였다.

 

손권의 병사와 말은 모두 무너져 내려 감히 대항하려는 자가 없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전투를 하여 오나라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였으므로 장료는 병사를 줄여 수비를 공고히 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곧 안정되었고 여러 장수들은 모두 장료에게 감복했다. 손권은 10여 일 동안 합비성을 포위했으나 공략할 수 없었으므로 병사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장료는 여러 군사를 인솔하여 추격해 거의 손권을 다시 사로잡을 뻔 했다. 조조는 장료의 용맹함을 매우 칭찬하고 정동장군을 수여했다.

 

216 (건안 21) 조조는 손권을 정벌하려고 합비성에 도착해 그해 장료가 전투했던 곳을 순시하고 오랫동안 감탄하였다. 곧 장료의 병사를 늘리고 군사를 많이 머물게 하며 주둔지를 거소로 옮겼다. 관우가 번성을 포위하자 손권은 위나라의 신하를 청하자 조조는 장료와 여러 군사들을 불러 모두 조인을 구하게 하였다. 장료가 도착하기도 전에 서황이 관우를 격파하고 조인의 포위망을 풀었고 관우는 손권의 기습을 받아 살해당한다.

 

조비가 즉위한 후 장료를 전장군에 임명했다. 손권이 다시 공격하자 장료를 합비로 돌려보내 주둔하도록 하고 작위를 높여 도향후라고 했다. 조비가 황제에 즉위한 후 장료를 진양후에 봉했다. 221년 장료가 군사를 돌려 옹구에 주둔했는데 병에 걸렸다. 조비는 시중 유엽에게 태의를 데리고 가서 그의 병을 살피게 하였다. 병의 차도가 없었으므로 조비는 장료를 영접하고자 친히 수레를 타고 그가 사는 곳으로 가서 장료의 손을 잡고 황제가 입는 옷을 하사했다. 태관들은 매일 황제가 먹는 음식을 보냈다. 병이 좋아지자 장료는 주둔지로 돌아갔다. 손권이 또 공격해오자 조비는 장료를 보내 조휴와 배를 타고 해릉에 도달하여 강가에 주둔하도록 했다. 손권은 매우 두려워하며 장수들에게 장료를 경계할 것을 명했다. 그해 장료는 손권의 장수 여범을 비롯해 여러 장수들을 무찔렀다. 장료는 병세가 위독해 강도에서 사망하였다. 시호를 강후라 하였고 아들 장호가 작위를 계승했다.

 

[삼국지 연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으나 정사와 달리 여포의 부하장수로 나오는데 여포의 팔건장 중 1대장으로 등장한다. 하비성에서 여포가 패배하고 진궁, 고순등과 함께 포박되어 사형당할 뻔 했지만 관우의 변호로 조조에게 항복한다. 관우와는 친구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 후 서주에서 배신한 유비를 격파하고 관우를 조조에게 항복하도록 설득하였고 후에 관우가 조조에게 내건 조건을 토대로 조조 밑을 떠나 다섯 관문을 강행 돌파하자 그를 추격해 단기필마로 싸우는 하후돈을 말린다.

 

관도전투에서는 장기를 무찌르고 원소과 죽은 후에는 저곡과 오환족의 답돈을 토벌하여 북방 평정에 힘을 쓴다. 적벽전투에서는 조조를 습격하던 황개에게 화살을 쏘아 구원한다. 조조군이 패퇴하고 퇴각하던 중 화용도에 매복하고 있던 관우에게 이전의 은혜를 상기시켜 탈출을 묵인받고 무사히 귀환한다. 후에 합비를 수비하여 손권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인다. 첫 합비 전투에서는 오나라 장수 송겸과 태사자를 토벌하였다. 조비가 즉위한 후 224년 오나라를 토벌할 때 오나라 장수 서성의 계략으로 위군이 대패하고 장료 또한 허리에 정봉의 화살을 맞고 그 상처가 깊어져 사망하는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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