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공산 劉岱 公山]
유대의 자는 공산이며 동래군 모평현 출신이다. 생년은 미상이나 192년에 사망한다. 후한 황실의 일족이며 양주자사 유요의 형이다. 유대는 유요와 형제 사이가 좋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으며, 겸허하게 남의 의견을 잘 들어주었기에 칭송이 자자했다.
원래는 후한의 시중이었지만 189년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자 유대를 연주자사로 임명했다. 190년에는 반동탁 연합군에 참가하였다. 진류태수 장막, 동군태수 교모, 산양태수 원유와 함께 진류군 산조현에 주둔하였으나 동탁이 강하여 감히 공격하지 못하였다. 유대는 동료 동군태수 교모와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유대가 군량미 차용을 교모에게 요청하였는데 거절한 것이 원인이 되었고 결국에는 교모를 죽이고 하내태수 왕광이 동군태수를 겸하게 하였다.
유대는 원소,공손찬과 화친하였었고 원소의 처자는 유대가 머물고 있는 곳에 있게 되었고, 공손찬의 종사 범방이 기병을 거느리고 유대를 도왔다. 훗날 원소와 공손찬의 사이가 나빠지자 공손찬은 유대에게 원소의 처자를 자신에게 보내어 원소와의 관계를 끊도록 하였다. 유대는 결단하지 못하다가 정욱을 초빙하여 자문하였고, 정욱은 “원소가 가까이 있으며 지금은 열세여도 결국은 공손찬을 사로잡을 것을 조언 했다. 유대는 정욱의 조언을 따랐고 공손찬은 원소에게 패배했다.
192년 청주의 황건적이 연주로 쳐들어 왔다. 임성상 정수가 살해되었는데 유대는 포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황건적과 싸우다가 전사한다.
조조의 장수로 위의 유대와 동명이인인 사람이 있는데 [삼국지 연의]에서는 이 두 인물이 한명의 인물로 합쳐져 묘사가 되고 있다. 연의에서는 반동탁 연합군이 결집 된 후 조조가 연주를 공략했을 때 항복하는 것으로 나온다. 후에 유비가 서주의 차주를 죽이고 조조를 배신하자 왕충과 함께 5만 병사로 유비를 공격하는데, 처음에는 조조가 원소와 대치하기 위한 견제역으로 수비를 강화한다. 마침내 공격 명령이 내려지고 왕충이 먼저 출진하지만 관우에게 생포되며 유대는 장비에게 생포당한다. 유비는 이 두사람에게 모반할 마음이 없다 하면서 석방한다. 조조는 노하여 유대,왕충을 참수하려 하지만 공융의 중재로 면직에 그친다. 이 후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실제로는 유대가 연주에서 황건적을 공격하다가 전사하였기 때문에 위 두 사람은 다른 인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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