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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30. 원술 공로

[원술 공로 袁術 公路]

 

원술의 자는 공로이며 여남군 여양현 출신이다. 생년은 미상이나 199년에 사망한다. 원술은 사세삼공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후한의 사도 원봉의 아들이다. 원소의 사촌동생이라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복동생일 가능성이 높다. 원소와 마찬가지로 의협적인 기질이 강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효렴으로 추천되어 낭중에 임명되고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했으며, 후에 절충교위와 호분중랑장이 되었다.

 

하진의 심복으로 호분중랑장이 되었을 때 하진이 환관에게 주살되었고 동탁이 조정을 장악했다. 동탁이 소제를 내쫓고 헌제를 옹립하려 할 때 원술을 후장군에 임명했지만 원술은 동탁에게 화를 당할까 두려워 하여 남양으로 도망갔다. 마침 그 때 손견이 남양태수 장자를 죽이자 원술은 남양군을 점령한다. 남양은 호구가 수백만에 이르렀지만 원술이 사치스럽고 음란하며 제멋대로 욕심을 부려 세금을 징수할 때 한도가 없었으므로 백성들은 고통에 시달렸다.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자 원술은 참여했고, 맹주인 원소는 동탁이 황제를 시해한 역적이라 규탄하고 동탁에 의한 정부를 괴뢰정부라 하며, 전국적으로 각지의 호족과 지방관들을 선동하였다. 원소는 새로운 황제로 유우를 추대하려 하였고 원소는 유우를 구심점으로 세력을 결집시키려 하였다. 원술은 장차 신하 된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었고 유우가 옹립되면 자신의 야망에 방해가 될 것으로 여겨 옹립에 반대하고 황실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동탁에게서 황제를 구출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원소에게 역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규탄하며 정실 출생이었던 원술은 노비에게서 태어난 원소가 두각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항상 원소를 비난하였다.

 

유우가 황제의 뜻을 거절하여 원소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는데 결국엔 연합군이 와해되었고 유우를 구심점으로 결집하고자 했던 세력들은 구심점을 잃고 흩어져 각지에서 할거 양상을 띄기 시작한다. 이윽고 원소와 원술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다 [삼국지 정사]에서는 특별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삼국지 연의]에서는 기주를 획득한 원소에게 말 1천필을 요청했는데 원소가 이를 거절 했기 때문이라 한다.

 

원소와 원술이 사이가 멀어진 후 원술은 형주자사 유표와도 불화가 생겼는데 당시 원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공손찬과 손을 잡는다. 원소는 진류를 침입하였는데 조조는 원소와 연합하여 원술의 군대를 공격하여 크게 물리친다. 원술은 근거지를 잃고 남은 군사를 데리고 구강으로 도주하여 양주자사 진온을 죽이고 양주를 지배하여 장훈 교유등을 대장군으로 임명했다. 이각이 장안을 장악한 뒤 원술과 손을 잡기 위해 원술을 좌장군으로 삼고 양책후에 봉하고 가절을 주려고 태부 마일제를 파견했다. 하지만 원술은 사자의 증표였던 가절을 빼앗고 마일제를 억류하여 돌려보내지 않았다.

 

양주에 자리를 잡은 원술은 서주백을 자칭하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서주로 세력 확장을 하려 했는데 연합관계였던 도겸을 자극하게 되었다. 당시 도겸은 병이 들어 위독해진 상태였는데 도겸과 서주의 호족들은 유비를 서주목으로 추대하였다.

 

195 (흥평 2) 헌제가 장안에서 탈출하여 낙양으로 향하는 도중 조양에서 이각과 곽사에게 패배한다. 원술은 부하들을 소집하여 자신이 황제가 될 뜻을 밝히자 주부 염상이 반대하여 실현되지 않았다가 장형의 부명(하늘이 제왕이 될만한 사람에게 내리는 징조)을 이용하여 결국 스스로 황제를 참칭한다. 그러나 원술의 사치가 나날이 심해져 주민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고통을 받았지만 궁전에는 쌀과 고기가 썩을 정도로 남아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병사들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원술은 자신의 아들과 여포의 딸을 혼인시켜 여포와 손을 잡으려 하였다. 여포는 처음엔 원술에게 딸을 보냈지만 진규의 만류로 원술에게 보낸 딸을 추격하여 다시 데려왔으며 원술의 사자인 한윤을 조조에게로 보낸다. 한윤이 허도의 저자에서 처형당한 것을 알게 된 원술은 대노하여 장훈을 대장으로 삼아 여포를 공격하지만 참패한다. 결국엔 조조에게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이윽고 여포는 뒤늦게 원술과 손잡고 대항하였는데 여포가 하비성에서 조조에게 포위당하자 원술은 여포를 구원하려 했지만 오히려 반격을 받아 패주하였다. 원술은 겨우 성을 지켜내며 여포를 구원하지 못하였다. 이 때에도 갈수록 원술의 사치는 더더욱 심해졌었다.

 

결국 양곡이 바닥나고 관료와 병사들을 유지할 능력이 없어진 원술은 자신의 부하였던 뇌박, 진란에게 의탁하려 했으나 오히려 성을 지키며 저항하였다. 원술은 원소에게 황제의 칭호를 양도하고 청주로 가서 원담에게 투항하려 하였으나 조조가 보낸 유비에게 저지당하고 병으로 길에서 사망하게 된다. 원술 사후 원술의 가족은 옛 부하인 여강태수 유훈에게 의탁하려 하였는데 손책이 유훈을 격파하여 손책에게 거두어진다. 원술의 딸은 손권의 후궁이 되고 원술의 아들 원요는 낭중에 임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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