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표 경승 劉表 景升]
유표의 자는 경승이며 산양군 고평현 출신이다. 142년에 태어나 208년에 사망한다. 전한 시대 노국의 왕이었던 유여의 자손이다 어려서부터 유명하여 팔준이라 불리웠으며, 키가 8척이 넘었고 용모와 위엄이 넘쳤다. 처음에는 대장군 하진을 섬겨 속관으로 북군 중후가 된다. 영제가 사망한 후 왕예를 대신하여 형주자사가 되었다.
190년에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었을 때에는 유표도 군사를 모아 양양성에 주둔했다. 하지만 유표가 형주에 부임했을 무렵 강남 지방은 각지에서 반란이 빈번하여 무법천지가 되었다. 유표는 괴량,괴월 형제와 채모등을 초빙하여 평정 방법을 논의하였다. 유표는 괴월의 책략에 따라 반란의 주모자들을 불러내어 전원 참살하고 부하 군사를 수중에 넣는다. 나아가 계략으로 적을 쳐 괴멸시키거나 굴복시켜 형주를 평정하였다.
192년에는 남양의 원술이 손견과 연합하여 유표의 관할지인 형주를 습격하려 하였는데 원술은 손견을 보내 유표를 공격하게 하였다. 손견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고 패배하였으며, 원술은 끝내 유표를 이길 수 없었다.
193년엔 동탁 사후 이각과 곽사는 장안에 들어와 조정을 장악했는데 유표와 연합하려 하였다.유표를 진남장군,형주목으로 임명하고 성무후로 봉하여 가절을 주었다. 이 후 이각,곽사 무리에게 도주한 장제가 형주를 침입하여 양성을 공격하였지만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고 유표는 장제의 군사들을 거두었다. 장제의 군사들은 매우 기뻐하여 유표에게 복종하였다. 유표는 장수를 도와 조조와 싸웠다.
이후 장사태수 장선이 배반을 하였는데 유표가 몇 년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장선이 병으로 죽자 아들 장역이 장사태수가 되었는데 유표는 계속하여 공격함으로써 영릉,계양을 수복하였고 유표가 거느린 군사는 십수만명이 되었다.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할 때 원소는 유표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응하기만 했을 뿐 도우러 가지 않았다. 또한 조조도 돕지 않고 형주를 지키며 천하의 정세 변화를 관망할 뿐이었다. 유표는 형주의 평온을 유지하는 한편 학교를 세우고 널리 유학자를 불러들여 사마휘와 제갈량, 서서와 같은 현자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201년 관도전투 중에 유비가 조조에게 패배하여 유표에게 도망쳐 왔는데 유표는 후하게 대접은 하였지만 유비를 중용하진 않았다. 208년 (건안 13년)에 북방을 평정한 조조가 유표를 토벌하려 하였지만 조조의 군대가 형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유표는 사망한다.
당초 유표와 그의 처는 모두 어린 아들 유종을 총애하여 후사를 잇게 하였다. 채모와 장윤도 유종을 지지하였고 맏아들 유기가 강하태수로 나가면서 모두가 유종을 후계자로 받들자 유기와 유종의 사이는 멀어진다. 괴월, 한숭등이 조조에게 귀순할 것을 권하였고 조조의 군대가 양양으로 오자 유종은 형주를 바치고 유비는 하구로 도망친다. 이후 형주는 위,오,촉 삼국에 의해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란 지역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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