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빙 중업 文聘 仲業]
문빙의 자는 중업이며 남양군 완현 출신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유표의 수하장수로 유표의 대장이 되어 북방의 수비를 담당했다. 후에 조조가 형주를 정벌할 때 유표가 사망하고 유종이 형주목을 계승하였는데 유종은 항복하면서 문빙을 불러 함께 항복하자고 하자 문빙은 “저 문빙은 형주를 지키지 못했으니 오직 처벌받기만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조조가 한수를 건너자 문빙이 조조를 만났는데 조조가 그에게 왜 늦었는지를 물었다. 문빙은 “이전에는 유표를 보필하여 국가를 받들 수 없었고 유표는 비록 죽었지만 저는 항상 한천을 지키며 영토를 보존하고 살아서는 외롭고 문약한 유종을 배반하지 않고 죽어서는 땅속에 있는 유표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원했지만 제 희망이 실현되지 않은 채로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저는 진실로 비통하고 부끄러워 일찍 당신을 볼 낯이 없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얼굴 가득 눈물을 흘렸다 조조는 매우 감동하여 문빙을 후하게 대하였다.
조조는 문빙에게 군사를 주어 조순과 함께 장판으로 가서 유비를 추격하도록 하였다.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였을 때 강하군이 오나라의 국경이 맞닿아 있어 그 일대 백성들은 불안해 하였는데 조조는 문빙을 강하태수로 임명하고 북방 군대를 지휘하도록 하였고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다. 악진과 더불어 심구에서 관우를 토벌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승진하여 연수정후로 봉해지고 토역장군의 칭호를 받았다. 또 한진으로 가서 물자를 수송하는 관우의 부대를 공격하고 형성에서 적군의 배를 불태웠다.
220년 (황초 원년) 조비가 제위에 오른 후 작위를 장안향후로 했으며 가절을 주었다. 하후상과 함께 강릉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단독으로 군대를 이끌고 면구에 주둔하고 도중에 석범에 진영을 세웠을 때 적의 부대와 싸워 큰 공을 세웠으므로 후장군으로 승진하고 신야후에 봉해졌다. 손권이 5만 군사를 이끌고 석양에서 문빙을 친히 포위하여 형세가 매우 급박했는데 문빙이 굳건하게 지키며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포위하여 공격한지 20여 일 만에 철수했다. 문빙은 이들을 추격하여 무찔렀다.
문빙은 강하에서 수십 년간 태수로 있었는데 위엄과 은혜가 있었으므로 적국까지 명성을 떨쳐 적군이 감히 침입해 오지 못했다. 문빙의 식읍 중 일부를 떼내어 문빙의 아들 문대를 열후로 삼았고 또 조카 문후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주었다. 문빙이 사망하자 시호를 장후라고 했다. 문대 또한 일찍 사망하여 문빙의 양자 문휴가 작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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