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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247. 문빙 중업

[문빙 중업 文聘 仲業]

 

문빙의 자는 중업이며 남양군 완현 출신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유표의 수하장수로 유표의 대장이 되어 북방의 수비를 담당했다. 후에 조조가 형주를 정벌할 때 유표가 사망하고 유종이 형주목을 계승하였는데 유종은 항복하면서 문빙을 불러 함께 항복하자고 하자 문빙은 저 문빙은 형주를 지키지 못했으니 오직 처벌받기만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조조가 한수를 건너자 문빙이 조조를 만났는데 조조가 그에게 왜 늦었는지를 물었다. 문빙은 이전에는 유표를 보필하여 국가를 받들 수 없었고 유표는 비록 죽었지만 저는 항상 한천을 지키며 영토를 보존하고 살아서는 외롭고 문약한 유종을 배반하지 않고 죽어서는 땅속에 있는 유표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원했지만 제 희망이 실현되지 않은 채로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저는 진실로 비통하고 부끄러워 일찍 당신을 볼 낯이 없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얼굴 가득 눈물을 흘렸다 조조는 매우 감동하여 문빙을 후하게 대하였다.

 

조조는 문빙에게 군사를 주어 조순과 함께 장판으로 가서 유비를 추격하도록 하였다.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였을 때 강하군이 오나라의 국경이 맞닿아 있어 그 일대 백성들은 불안해 하였는데 조조는 문빙을 강하태수로 임명하고 북방 군대를 지휘하도록 하였고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다. 악진과 더불어 심구에서 관우를 토벌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승진하여 연수정후로 봉해지고 토역장군의 칭호를 받았다. 또 한진으로 가서 물자를 수송하는 관우의 부대를 공격하고 형성에서 적군의 배를 불태웠다.

 

220 (황초 원년) 조비가 제위에 오른 후 작위를 장안향후로 했으며 가절을 주었다. 하후상과 함께 강릉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단독으로 군대를 이끌고 면구에 주둔하고 도중에 석범에 진영을 세웠을 때 적의 부대와 싸워 큰 공을 세웠으므로 후장군으로 승진하고 신야후에 봉해졌다. 손권이 5만 군사를 이끌고 석양에서 문빙을 친히 포위하여 형세가 매우 급박했는데 문빙이 굳건하게 지키며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포위하여 공격한지 20여 일 만에 철수했다. 문빙은 이들을 추격하여 무찔렀다.

 

문빙은 강하에서 수십 년간 태수로 있었는데 위엄과 은혜가 있었으므로 적국까지 명성을 떨쳐 적군이 감히 침입해 오지 못했다. 문빙의 식읍 중 일부를 떼내어 문빙의 아들 문대를 열후로 삼았고 또 조카 문후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주었다. 문빙이 사망하자 시호를 장후라고 했다. 문대 또한 일찍 사망하여 문빙의 양자 문휴가 작위를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