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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251. 제갈근 자유

[제갈근 자유 諸葛瑾 子瑜]

 

제갈근의 자는 자유이며 낭야군 양도현 출신이다. 174년에 태어나 241년에 사망한다. 제갈량, 제갈균의 형이다. 전란을 피해 강동으로 이주하였는데 마침 손책이 사망하고 손권이 뒤를 이었는데 손권의 매형인 홍자가 제갈근을 만나 보고 매우 기이한 인물로 여겨 손권에게 추천했다. 제갈근은 노숙과 함께 빈객 대접을 받았고 나중에 손권의 장사가 되었다가 중사마로 전임되었다.

 

215 (건안 20) 손권은 제갈근을 사자로 삼아 촉으로 보내 유비와 우호관계를 맺도록 하였고 그는 동생 제갈량과 함께 공적인 일로 서로 만날 뿐 공적인 일이 끝나면 사사로이 만나는 일은 없었다. 제갈근은 손권과 이야기를 하며 풍간할 때 일찍이 강하고 직선적인 말을 한 적이 없고 풍채를 미미하게 나타내고 뜻을 조잡하게 말하였으며 손권의 생각이 부합되지 않으면 그 내용을 버리고 다른 화제로 들어가서 서서히 다른 일에 기탁하여 실마리를 만들고 같은 종류의 사물을 빌려 손권의 이해를 구하였다. 그래서 손권의 마음이 이따금 풀리곤 했다.

 

손권이 오군 태수 주치를 원망하고 있는 것을 풀어주었으며 손권이 교위 은모를 꾸짖고 예측할 수 없는 죄를 내리려 하였지만 신하들의 만류에도 오직 제갈근은 묵묵히 있었는데 제갈근의 말을 듣고 용서하였다. 후에 제갈근은 관우를 토벌하는데 참가하여 선성후로 봉해지고 수남장군 신분으로 여몽을 대행하여 남군 태수를 겸하였으며 공안에서 머물렀다.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 오를 치려고 하자 손권은 화해를 요청하였는데 제갈근은 유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때 어떤 사람은 제갈근이 따로 신임하는 사람을 보내 유비와 소식을 통했다고 말하였다. 손권은 제갈근은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222 (황무 원년) 좌장군으로 승진하고 공안독이 되었으며 완릉후로 봉해졌다. 우번이 고지식하고 솔직한 성격으로 쫓겨났을 때 제갈근만이 여러 차례 그를 위해 말을 하였다. 제갈근의 사람됨은 당당한 용모에 생각이 깊으므로 그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존경은 넓고도 고아했다. 손권도 제갈근을 신뢰하였으며 중대한 일은 몸소 그를 찾아가 자문했다. 손권이 황제를 칭할 때 제갈근은 대장군, 좌도호로 임명되었으며 예주목을 겸했다. 제갈근의 아들 제갈각은 당시 명성이 대단하였는데 손권도 그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제갈근은 늘 그를 싫어하며 가문을 보전하지 못할 자식이라고 말하고 이 때문에 걱정하였다.

 

241 (적오 4) 제갈근은 6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그는 기름 칠을 하지 않은 관에 평상시 옷으로 염하고 모든 일은 검소한 원칙에 따르라고 유언하였다. 제갈각은 이미 자신의 노력으로 후에 봉해졌기 때문에 동생 제갈융이 제갈근의 작위를 이었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적벽 대전 때 처음으로 등장한다. 제갈량이 손권을 설득하기 위해 노숙과 함께 오나라로 왔는데 손권이 제갈량을 맞이하기 전에 그를 맞이한 사람이 바로 제갈근이었다. 제갈근이 왜 먼저 날 보러 오지 않았냐고 묻자 제갈량은 지금은 공무중이라고 얘기한다. 제갈근은 이에 수긍하고 일이 끝나면 자신을 보러 오라며 다른 나라의 신하를 대하는 예를 올리고 돌아갔다.

 

손권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혼인시키기 위해 사자로 파견되어 관우에게 가지만 개 한테 호랑이의 딸을 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거절당하기도 한다. 그 뒤 관우가 손권의 기습으로 맥성에서 포위당하자 관우를 항복시키기 위한 사자로도 파견되었고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갚기 위해 오를 침공했을 때도 화해를 청하는 사신으로 나가지만 거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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