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 자단 曹眞 子丹]
조진의 자는 자단이며, 출생지는 불명이다. 출생년도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231년에 사망한다. 조소의 아들이었으나 조조를 대신해 살해당했기 때문에 조진을 어렸을 때 조조에게 맡겨져 조비와 함께 양육된다. 조진은 항상 사냥을 다녔는데 호랑이를 쏘아 쓰러트릴 정도로 용맹하였다. 조조는 조진을 칭찬하며 호표기를 통솔하게 하여 영구현의 도적을 토벌하게 하였다. 조진은 도적을 토벌하고 영수정후에 봉해진다.
217년 유비와의 한중쟁탈전 때에는 조홍 밑에서 편장군으로 종사하고 하변에서 오란과 뇌동을 격파하는데 공을 세우고 중견장군이 되었다. 이후 장안으로 돌아와 조조를 수행하여 중령군이 되었다. 하후연이 정군산에서 황충에게 죽자 조조는 조진을 보내 서황등을 지휘하여 양평에 있는 유비의 장수 고상을 격파하였다. 조조가 한중에서 물러나자 무도에 있던 조홍을 맞이 하고 진창에 주둔하였다.
220년 조조가 사망하고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진서장군과 도독옹양주제군사에 임명되고 동향후에 봉해진다. 장진이 서천군에서 모반했을 때는 비요를 보내 토벌하였고 장진의 목을 베었다. 이후 220년 조진은 수도로 돌아와 상군대장군과 도독중외제군사가 되어 하후상과 함께 손권을 정벌한다. 조진이 우저의 군영을 격파하고 중군대장군에 임명되고 급사중이 되었다.
226년 조비가 사망하고 진군,사마의와 함께 조비의 유언을 받아 조예를 보좌하였고 소릉후에 봉해지며 대장군이 된다. 제갈량이 기산을 포위하자 조진이 군사들을 지휘하여 미읍에 주둔하고 장합을 보내 마속을 공격하여 크게 무찌르고 제갈량을 격퇴시킨다. 조진은 제갈량이 진창으로 공격해 올 것을 예측하고 학소와 왕생을 진창을 보내 지키게 하였는데 예상대로 제갈량은 진창을 포위 하였다. 조진의 대비로 제갈량은 진창에서 물러간다.
230년 조진은 대사마로 승진되고, 칼을 차고 신을 신은 채 어전에 드나들어도 되었고 조정에 들어올 때 종종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받았다. 조진은 조예에게 여러길로 하여 촉나라를 정벌할 것을 권하였고 조예는 직접 배웅을 하였다. 조진은 자오도를 따라 남쪽으로 갔고 사마의는 한수를 거슬러 올라가 남정에서 조진과 합류하였다. 야곡도와 무위 방면에서도 촉을 공격해 들어갔다. 하지만 비가 30 여일 동안 내려 잔도가 끊어져 조진은 회군하였다.
조진은 항상 부하들과 함께 고생하고 포상이 충분하지 못한자는 자기 재산으로 보충하는 등 성실하고 청렴해 부하들은 모두 조진에게 임용되기를 원했다. 231년 회군 후 낙양으로 돌아온 조진은 병이 깊어 사망하게 되었다. 시호를 원후라 하고 아들 조상이 뒤를 이었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정사의 내용과 달리 촉과 위나라에게 여러 번 패배하는 패장의 이미지로만 나오고 제갈량에게 농락 당하는 등의 모습이 묘사 된다. 또한 조진이 사망할 때에도 전투 패배로 인해 병상에 누웠을 때 제갈량의 편지로 흥분한 나머지 병이 더 깊어져 사망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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