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 문장 魏延 文長]
위연의 자는 문장이며 의양 출신이다. 생년은 미상이나 234년에 사망한다. 위연은 유비를 따라 촉으로 들어가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아문장군으로 승진한다. 후에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한중태수로 모두 장비가 임명될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유비는 위연을 신임하여 진원장군으로 삼고 한중태수를 겸하게 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유비는 여러 신하들과의 큰 모임을 열었는데 앞으로 큰 중책을 맡긴 것에 대해 묻자 위연은 “만약 조조가 천하를 들어 쳐들어 온다면 대왕을 위해 이를 막아 낼 것입니다. 10만의 군사가 쳐들어온다면 대왕을 위해 그들을 삼켜버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유비는 위연을 칭찬하였다. 이어 유비가 황제를 칭하자 위연은 진북장군으로 승진한다.
223년 (건흥 원년)에는 도정후로 봉해지고 227년 (건흥 5년)에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하자 다시 위연을 독전부, 영 승상 사마, 양주자사로 임명한다. 230년 (건흥 8년) 제갈량은 위연을 시켜 강중으로 쳐들어가게 하였다. 위연은 위나라 후장군 비요, 옹주자사 곽회와 양계에서 싸웠고 위연은 위나라 군을 대파했다. 이 공로로 위연은 전군사, 정서대장군, 가절로 승진하고 남정후에 봉해진다.
231년 (건흥 9년) 제갈량이 4차 북벌 때 농서로 진출하여 상규의 보리를 두고 위군과 대치하다 노성에서 한차례 접전을 펼친다. 한진춘추에 의하면 제갈량의 명을 받은 위연이 오반, 고상과 함께 출진하여 사마의가 지휘하는 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3천의 수급을 얻는 승리를 거둔다.
위연은 제갈량을 따라 북벌을 할 때마다 매번 군사 만 명을 요청하여 한신처럼 진군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제갈량은 이를 제지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위연은 늘 제갈량을 겁이 많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재주가 모두 쓰이지 못한다고 한탄하였다. 위연은 사졸을 잘 기르고 용맹이 남보다 뛰어났지만 성격이 교만하여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하였다. 하지만 양의만이 위연을 피하지 않자 위연은 매우 분노하였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234년 (건흥 12년) 제갈량이 북곡구를 나오며 위연을 선봉으로 삼았다. 제갈량의 둔영을 나와 10리 되는 곳에 이르러 위연은 머리 위에 뿔이 생기는 꿈을 꾸었다. 조직에게 해몽을 묻자 조직은 위연을 속이며 “무릇 기린은 뿔이 있으나 사용하지는 않으니, 이는 싸우지 않고도 적이 절로 격파될 징조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뿔이란 글자는 칼 아래에 용이오, 머리 위에서 칼을 쓴다는 것이니 그 흉함이 매우 심하다고”말을 하였다.
가을이 되자 제갈량의 병은 점점 깊어져만 갔는데 제갈량은 은밀히 양의, 비의, 강유와 함께 자신이 죽은 뒤 퇴각할 명령을 내렸다. 제갈량은 위연에게 후방을 지키게 하고 강유에게 그 다음에 있게 하고 위연이 명령을 따르지 않더라도 군이 곧바로 출발하게 하였다. 제갈량이 사망하자 제갈량의 죽음을 숨기고 양의는 비의에게 위연의 뜻을 살피게 하였다. 위연은 양의의 지시를 받는 것이 못마땅하여 이를 무시하였다.
위연은 사람을 보내 양의를 몰래 엿보게 하였는데 양의 등이 제갈량의 지시에 따라 여러 군영들이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가자 위연은 화가나 양의가 출발하기 전에 잔도를 끊고 불태워버렸다. 위연과 양의는 서로 반역을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하지만 장완과 동윤은 모두 양의의 편을 들어주었고 반대로 위연을 의심하였다. 양의는 산의 나무를 베어내며 길을 뚫고 밤낮으로 행군하였고 위연 또한 뒤를 따라붙었다. 위연은 먼저 도착하여 남곡구를 점령하고 군사들을 보내 양의를 공격하니 양의는 왕평을 앞세워 위연을 막았다. 왕평은 “돌아가신 공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거늘, 너희들이 어찌 감히 이런 짓을 하느냐”고 위연의 군대를 꾸짖자 병사들은 위연에게 잘못이 있는 것을 알고 모두 달아났다.
결국 위연은 아들들과 함께 한중으로 달아났고 양의는 마대를 보내 위연을 추격하고 참수하였다. 위연의 수급이 도착하자 양의는 위연의 머리를 짓밟으며 “하찮은 종놈아! 다시 못된 짓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며 위연의 삼족을 멸하였다. 장완은 숙위하는 여러 영을 이끌고 북쪽으로 행군하다가 위연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군사를 되돌렸다. 원래 위연은 촉나라를 배신하고 위나라에 항복하려는 것이 아닌 양의를 제거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반역자가 되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정사와 달리 연의에서는 유표의 부하로 처음 등장하고 유비가 양양으로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는 채모, 장윤이 유비에게 활을 쏘는 것을 보고 문을 지키는 병사들을 참살해 유비의 입성을 돕는다. 하지만 실패하고 문빙과 싸우다가 장사태수 한현에게 도망간다. 이후 유비가 형주 남부 4군 평정에 나서자 장사에서 관우와 황충이 일기토를 하게 되는데 황충의 말이 부상을 당하고 멀쩡히 돌아오자 한현은 황충을 의심하게 된다. 위연은 한현이 황충을 죽이려 하자 분개하여 백성들의 지지를 업고 한현을 죽이고 유비에게 항복한다.
하지만 제갈량은 위연을 반골의 상이라 하며 위연을 처형하라 하였지만 유비가 중재에 나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후 남만 정벌에서의 활약 내용을 제외하고 제갈량이 북벌을 할 때의 내용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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