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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309. 장기 덕용


[장기 덕용 張旣 德容]




장기의 자는 덕용이며 풍익군 고릉현 출신이다. 생년 미상이나 223년에 사망한다. 장기는 16세의 나이로 군의 작은 관리가 되어 중요한 임무를 역임하였고 효렴으로 천거되었지만 부임하지는 않았다. 조조가 사공으로 있을 때 그를 불렀지만 가지 않았으며, 무재로 천거되어 신풍의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202(건안 7) 원소가 죽고 원상은 여양에서 조조의 공격을 막는 한편 하동태수 곽원과 병주자사 고간, 남흉노의 선우인 호주천에게 평양을 공격하게 하며 관중 지방의 군벌들과 연합하려 하였다. 이에 장기는 사례교위 종요의 명령으로 관중의 유력자인 마등을 설득하도록 하였다. 장기는 그들에게 이해득실을 따지며 마등을 설득하였고 마등은 아들 마초에게 1만여 병사를 인솔하여 종요와 함께 고간, 곽원을 격파하러 보냈다. 그들은 곽원의 군사들을 격파하고 곽원의 목을 베었고 고간과 호주천은 항복하였다.

 

후에 고간이 병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조조는 장기를 의랑으로 임명하여 종요의 군대 일에 참여하도록 하고 서쪽으로 가서 마등 등의 장수들을 불러오도록 하였다. 그들은 반란군을 격파하고 장염과 위고의 머리를 베었다. 고간은 형주로 달아났고 조조는 장기를 무시정후로 봉하였다.

 

조조가 형주를 정벌할 때 마등 등이 관중에 할거하고 있자 장기를 보내 마등 등을 설득하여 부하들을 해산시키고 귀향하도록 요구하였다. 마등은 허락하였지만 여전히 이전과 같은 행동을 하였기 때문에 장기는 사변이 일어날 것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여러 현에 문서를 보내 식량 등을 준비하도록 하자 마등은 부득이 동쪽으로 출발했다. 조조는 상주하여 마등을 위위로 임명하고 아들 마초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그 무리를 인솔하도록 했다.

 

후에 마초가 반란을 일으키자 장기는 조조를 딸 화음에서 마초를 격파하여 서쪽으로 관우를 평정했다. 장기는 경조윤으로 임명되었고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을 불러 위로하고, 다시 현과 읍을 일으켜 세웠으므로 백성들은 그를 흠모했다. 위국이 세워진 이후 장기는 상서가 되고 지방으로 나가 옹주자사가 되었다.

 

한중에 장로를 정벌할 때 산관으로 들어가 모반한 저족 사람들을 토벌하고 그들의 보리를 거두어 군량미로 제공했다. 장로가 항복하자 장기는 조조에게 한중의 백성 수만호를 취하여 삼보를 든든히 하도록 권했다. 한중 공방전 때는 조홍과 하변에서 오란을 격파하고, 하후연과 송건을 토벌하고 따로 임조와 적도를 공격하여 그들을 평정했다.

 

무위의 안준, 장액의 화란, 주천의 황화, 서평의 국연 등이 일제히 군을 들어 모반하여 스스로 장군이라고 부르며 서로 공격했다. 1년 후 화란은 안준을 죽였고, 무위의 왕비가 또 화란을 죽였다. 이 때 양주를 설치하지 않고 삼보로부터 서역에 이르기까지 모두 옹주에 예속 시켰다. 조비가 왕위에 올라 처음으로 양주를 설치하였을 때 안정태수 추기를 자사로 임명했다. 장액의 장진은 군수를 체포하고 병사를 일으켜 추기를 거부했고 황화와 국연은 각기 이전 태수를 쫓아서 병사를 일으켜 그에 호응했다. 장기는 호강교위 소칙의 세력을 키우게 하기 위해 병사들을 나아가게 하였고 때문에 소칙은 공을 세우게 되었다. 장기는 도향후로 승진되어 책봉되었다.

 

양주의 노수, 호이의 건기첩,치원다 등이 모반을 일으키자 조비는 장기가 아니면 양주를 안정시킬 수 없다고 하며 추기를 소환하고 장기를 양주자사로 임명하였다. 조비는 호군 하후유와 장군 비요 등을 파견하여 그의 후속부대가 되도록 했다. 장기가 금성까지 와서 황화를 건너려고 하는데 장수들은 병사가 적고 길이 위험하므로 깊숙히 들어갈 수 없다 였다. 하지만 장기는 황화를 건너 무위로 도착하여 점령한 후 비요는 도착하였지만 하후유 등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장기는 장수와 병사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상을 내리고 진군하여 오랑캐를 공격하였다. 오랑캐 기병 수천 명은 거센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놓아 진영을 불태우려 하였지만 장기는 밤에 정예 병사 삼천 명을 매복시켜 복병으로 삼고 참군 성공영에게 천여 명의 기병을 인솔하여 도전하도록 하고 퇴각하는 것처럼 하도록 명령했다. 오랑캐들은 성공영의 기병들을 추격하였고 이때 복병을 보내 그들의 뒤를 끊도록 하여 앞뒤에서 일제히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이겼다. 죽거나 포로가 된 오랑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

 

이 공로로 장기는 서향후로 봉해지고 식읍 2백 호를 받아 이전 것과 합쳐 4백 호가 되었다. 주천의 소형이 모반하고 강족의 호족 인대 및 정령의 오랑캐 만여 기병과 함께 국경기대의 현을 공격했다. 장기는 하후유와 함께 그들을 격파하고 소형과 인대 등은 모두 투항했다. 장기는 상소를 올려 하후유와 함께 좌성을 수리하고 요새를 구축하고 봉화대와 군량물자를 쌓아둘 곳을 설치하여 오랑캐의 침입에 방비할 것을 청했다. 서강족은 두려워하며 2만여 명의 백성들을 인솔하여 투항했다.

 

후에 서평의 국광 등이 군수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장기는 격문을 보내 각 북쪽 오랑캐 부락을 설득했고 국광 등과 연루된 사람을 사면하고 적의 장수를 죽여 머리를 보내는 자에게 반드시 영토와 상을 주도록 했다. 그래서 국광의 부하들은 국광의 머리를 베어 보냈다.

 

장기는 옹주와 양주를 10여 년간 통치했고 그의 정치와 은혜는 높이 평가 받았다. 그가 예의로써 초빙한 부풍의 방연, 천수의 양부, 안정의 호준, 주천의 방육, 돈황의 장공, 주생열 등은 최후에 모두 명성과 지위가 있었다.

 

223(황초 4)에 세상을 떠났다. 명제가 즉위하자 시호를 숙후라고 추증했고 아들 장집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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