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능 軻比能]
가비능의 출신지와 생년은 미상이나 234년에 사망한다. 선비족 가운데 작은 종족 출신이지만 용맹하고 매사 공평하며 재물을 탐하지 않아 무리들이 그를 추대하여 대인으로 삼았다. 가비능의 부락이 새라는 지역에 가까웠는데 원소가 하북을 점거한 이후 중원 사람들 다수가 망명하여 그에게 귀부하였다. 가비능은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병기와 갑옷, 방패 등 무기 만드는 법과 문자를 배우게 된다.
건안 연간에 염유를 통해 공물을 바치고 조조가 서쪽으로 관중을 정벌하자 전은이 하간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가비능은 3천 여기를 이끌고 염유를 따라 전은을 격파했다. 그 뒤 대군에 오환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가비능도 호응하여 침략한다. 조조는 아들 조창을 효기장군으로 삼고 북쪽으로 정벌하게 하여 이를 대파한다. 이에 가비능은 새 밖으로 달아났는데 그 뒤 다시 사자를 통해 공물을 바쳤다.
220년에 가비능이 사자를 보내 말을 바치자 조비는 가비능을 부의왕으로 삼았다.
221년 가비능이 선비족 중에 있던 위나라 사람 5백여 가를 내보내어 대군으로 돌아가 거주하게 했다.
222년 가비능이 부락의 대인, 소자, 대군 오환 수무로 등 3천여 기를 이끌고 소와 말 7만여 구를 몰고 와서 교역을 하는데 위나라 사람 천여 가를 보내 주어 상곡에 거주하게 했다. 그 뒤 동부 선비대인 소리, 보도근과 더불어 3부가 쟁탈하여 서로 공격했다. 이에 전예가 이들을 화해시키고 서로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224년 가비능이 다시 소리를 공격하자 전예가 경기병을 이끌고 곧바로 그 배후로 진격해 이를 견제했다. 가비능은 별도로 소수 쇄노를 보내 전예를 막게 했으나 전예가 진격하여 패주시켰다. 이에 가비능은 위나라를 배신하고 보국장군 선우보를 보내 보도근이 여러 차례 침략해 자신의 동생을 죽이면서 보도근이 자신을 무고했다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조비는 전예를 보내 위로하였다. 가비능은 점차 강성해져 공현 10여만기에 이르렀다. 매번 약탈하여 재물을 얻을 때마다 고르게 나누어주고 눈앞에서 한결같이 결정하여 끝내 사사로이 하는 바가 없었다. 이 때문에 그 무리들이 사력을 다하게 되었고 다른 부의 대인들이 모두 그를 경애하며 꺼렸지만 단석괴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225년 병주자사 양습에게 격파되었다.
228년 전예는 역관 하사를 가비능의 사위인 울축건의 부로 보냈는데 하사는 울축건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로 인해 전예는 서부 선비족 포두, 설귀니를 이끌고 새를 나와 을축건을 토벌해 대파했다. 전예가 돌아가는 길에 마성에 이르자 가비능은 병사 3만을 이끌고 전예를 7일간 포위한다. 상곡태수 염지는 염유의 동생으로 평소 선비족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염지가 가비능을 설득하자 이내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그 뒤 유주자사 왕웅은 교위를 겸하며 은혜와 신의로 이들을 안무했다. 가비능은 여러 차례 변경에 이민족들과 교류를 하고 유주로 와서 공물을 바쳤다.
233년 가비능이 보도근을 꾀어 병주에 반약하게 하고 서로 화친을 맺고는 스스로 1만 기를 이끌고 형북에서 그의 가족을 맞이했다. 병주자사 필궤는 장군 소상, 동필을 보내 공격하게했다. 가비능은 아들을 보내 기병을 이끌고 가서 소상 등과 안문군 누번현에서 싸우게 했는데 싸움에서 소상, 동필을 격파한다.
234년 왕웅이 용사 한룡을 보내 가비능을 죽이자 다시 그 동생이 즉위했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조비가 즉위한 후 사마의의 계책에 따라 다섯 방면의 걸쳐서 촉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가비능은 그 중 한 방면을 맡아 강족 병사 10만 명을 이끌고 서평관을
공격한다. 그러나 신위장군이라 불리는 두려운 존재였던 마초가 이끄는 촉나라 군대가 오자 싸우지 않고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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