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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365. 태사자 자의


[태사자 자의 太史慈 子義]



태사자의 자는 자의이며 동래군 황현 출신이다. 166년에 태어나 206년에 사망한다. 신장 77자에 긴수염, 활 솜씨는 백발백중으로 어릴 적부터 학문에 정통했다.

 

초기

21세의 나이에 군의 군조사로 봉직했다. 당시 군과 주 사이에 분쟁이 생겨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았으므로 먼저 듣게 되는 쪽의 의견이 옳은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이었다. 그때 주의 공문이 이미 출발하였고 군수는 나중에야 이를 두려워하여 사자로 보낼 이를 찾았다.

 

사자로 태사자가 선발되어 밤낮을 달려 낙양에 도착했는데 주의 공문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이에 태사자는 관리에게 주의 공문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고 공문을 찢어버렸다. 관리는 노발대발하며 태사자를 질책하였고 태사자는 관리에게 어차피 서로 처벌받을 처지이니 같이 도망가자고 말하며 설득을 하였고 관리는 태사자와 함께 성을 나왔는데 기회를 틈타 성으로 돌아가서 군수의 공문을 올렸다.

 

주에서 이 일을 듣고 즉시 관리를 보내 다시 공문을 올렸는데 담당관리는 앞서 공문이 왔다는 이유로 보지도 않았고 이 사건으로 불리한 처분을 받았다. 이 일로 태사자는 명성을 얻었지만 주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었고 화를 입을까 두려운 나머지 요동으로 피신한다.

 

공융을 구하다

소문을 들은 북해상 공융은 태사자를 뛰어난 인물이라 여겨 여러 차례 그의 모친에게 안부를 전하고 아울러 선물을 보냈다. 그 때 공융이 황건적의 침입을 받아 출병하여 도창에 주둔했는데 황건적 관해에게 포위되었다. 요동에서 돌아온 태사자는 공융에 대한 모친의 말을 듣고 서둘러 도창으로 이동했다. 태사자가 도착했을 때 당시 포위가 삼엄하지 않아 성으로 들어가 공융을 만날 수 있었다. 태사자는 공융에게 성밖으로 황건적을 격파할 것을 청하였지만 공융은 거절하고 원병을 기다리자고 하였다. 시일이 지나도 구원하러 오는 자가 없자 공융은 평원상 유비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하였고 태사자는 자청하여 임무를 맡게 된다.

 

성 밖에는 황건적의 포위가 삼엄해 나갈 수가 없었는데 태사자는 성으로 나가 활 쏘는 연습을 하고 다시 성으로 들어가는 기묘한 행동을 한다. 이 모습을 본 황건적들은 방심하기 시작했고 3일 째에 태사자는 적을 속이고 유비에게 갈 수 있었다. 유비에게 원군을 요청한 태사자는 3천명의 병사를 받아 다시 북해로 돌아갔고 구원병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황건적은 스스로 포위로 풀고 달아났다. 성의 포위가 풀리자 공융은 태사자를 더욱 귀하게 여겼고 모친에게 돌아가 은혜를 보답한 것을 알렸다.

 

유요를 섬기다

태사자가 요동으로 피신했을 때 같은 군 사람인 양주자사 유요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장강을 건너 곡아로 가서 유요를 만나려 하였다. 이 때 손책이 유요를 공격하였고 태사자는 유요를 섬기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태사자가 대장군 감이라고 칭찬하며 중용할 것을 권하였지만 유요는 태사자를 중용하면 허소가 비웃을 것이라고 거절한다.

 

유요는 태사자에게 적군을 정찰하도록 하였고 홀로 기병 한 명과 출발하였다가 도중에 손책을 만났다. 손책은 기병 13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모두 한당, 송겸, 황개의 무리였다. 태사자는 즉시 앞으로 나아가 싸우다가 손책과 싸우게 되었다. 손책은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목덜미를 끌어당기며 수극을 빼앗았고 태사자 역시 손책의 투구를 빼앗았다. 이 때 양쪽에 병사들이 몰려드는 사람에 서로 흩어지게 되었다.

 

싸움에서 패하자 태사자는 유요와 함께 예장으로 달아나야 했는데 무호로 도망가 산속을 떠돌며 단양태수라고 지칭했다. 그 때 손책은 이미 선성 동쪽을 평정하고 단지 경현 서쪽의 6개 현만 아직 항복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태사자는 경현으로 나아가 둔부를 세웠는데 산월인들이 다수 귀부 해왔다. 손책은 태사자를 공격하여 그를 붙잡았고 포박을 풀어주며 설득하였고 태사자는 손책을 섬기고 문하독으로 임명되었다. 오로 돌아와서는 병력을 주고 절충중랑장에 임명했다.

 

손책을 섬기다

양주자사 유요가 예장에서 죽자 그의 부하들이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이에 손책은 태사자를 보내 그들을 위로하도록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태사자가 북쪽으로 가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하였는데 손책은 태사자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태사자가 출발하려 할 때 손책이 얼마나 걸릴 것인지를 묻자 태사자는 60일 이내에 돌아올 것을 약속하였고 손책과의 약속대로 기간 내에 돌아왔다.

 

후에 유표의 조카인 유반이 계속 공격하자 손책은 유반을 막기 위해 해혼, 건창 및 주위의 여섯 현을 나누면서 태사자는 건창도위가 되었다. 태사자는 해혼 지역을 중점적으로 지켜 태사자는 유반을 상대하였고 이후로는 다시는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

 

태사자가 손책을 따라 마보의 도적을 토벌하러 갔을 때 둔영 안의 어떤 도적이 망루 위에서 욕을 했는데 손으로 망루의 기둥을 잡고 있었다. 태사자는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도적의 손을 관통하여 기둥에 박히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활 솜씨를 칭찬했다.

 

조조는 태사자의 명성을 듣고 서신을 보냈는데 상자를 열어 보니 안부를 묻는 글은 없고 단지 당귀만이 쌓여 있었다. 손권이 집권한 후로 유반을 제압하기 위해 태사자에게 남쪽 일을 맡겼다. 2064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태사자가 죽자 손권은 그의 죽음을 애석해 했다. 아들 태사향의 관직이 월기교위에 이르렀다.

 

삼국지 연의

삼국지 연의에서의 전반부 모습은 정사와 비슷하지만 정사에서는 적벽대전 이전에 사망한 반면 연의에서는 적벽대전 이후 합비 공방전에서 참전하기도 한다. 합비를 지키던 장료의 계략에 빠져 화살에 맞고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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