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 운장 關羽 雲長]
관우의 자는 운장이고 본래의 자는 장생이다. 하동군 해현 출신으로 생년 미상이나 219년에 사망한다. 관우는 망명하여 탁군으로 왔는데 유비가 병사들을 모을 때 관우는 장비와 함께 유비를 호위했다. 관우는 [삼국지 연의]에서는 화려하게 나오지만 [삼국지 정사]에서의 기록은 빈약한 편이다.
[삼국지 정사]
황건적의 난 이후 유비가 공손찬의 밑에서 평원의 상이 되었을 때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아 군대를 통솔하게 하였다. 유비는 잠잘 때도 관우 장비와 함께 자는 등 정이 깊었고 형제 같았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항상 유비 곁에 서 있었고 언제나 유비를 따라 다니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조조에게 의탁하던 유비가 원술을 토벌하고 서주로 돌아와 서주자사 차주를 습격하여 죽이고 관우는 하비성을 지켰다.
200년 (건안 5년) 조조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유비를 정벌하자 유비는 원소에게 달아나고 관우는 사로잡힌다. 조조는 관우에게 편장군으로 임명하고 매우 후하게 예우 하였다.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할 때 안량의 머리를 베었고 조조는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로 봉했다. 조조는 관우가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을 알고 장료를 통해 붙잡고 싶어하였지만 관우는 조조가 내린 상을 모두 봉하고 편지를 남긴 채 원소 군대에 속해 있던 유비를 찾아 떠난다.
이후 관우는 유비를 따라 유표에게 간다. 유표가 사망하고 조조의 군대가 형주를 평정하자 유비는 관우를 따로 보내 수백 척의 배를 이끌고 강릉에서 만나기로 한다. 조조가 추격하여 당양현의 장판에 이르자 유비는 가까운 길을 지나 한진으로 갔는데 마침 관우의 배와 서로 만나 함께 하구에 이르렀다. 손권이 병사를 보내 유비를 도와 조조에게 맞서도록 하였다. 유비는 형주의 여러 군을 되찾고 관우를 양양태수, 탕구장군으로 삼아 강북일대에 주둔하도록 하였다.
유비가 서쪽으로가 익주를 평정하는 동안 관우는 형주를 감독하고 관리한다. 관우는 마초가 항복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초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 마초의 인품과 재능이 누구와 비교할 만한지를 물었다. 제갈량은 미염공이라 하며 관우를 추켜세워줬고 관우는 편지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한다. 또한 관우가 화살에 맞고 왼쪽 팔이 꿰뚫린 적이 있었는데 상처는 다 나았지만 비가 오늘 날이면 뼈에 통증이 왔다. 의원은 화살촉에 독이 있다 하며, 관우의 팔을 째고 치료를 하였다. 관우는 장수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열었고 피가 떨어져 그릇에 가득 찼는데도 관우는 평소처럼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219년 (건안 24년)에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관우는 전장군에 임명된다. 관우는 군사들을 이끌고 번성에서 조인을 공격하였다. 조조는 우금을 보내 돕게 하였지만 폭우가 쏟아져 한수가 범람하는 바람에 우금이 통솔하는 군대가 모두 물에 빠졌다. 우금은 관우에게 항복했고 방덕은 참수당한다. 관우의 위세가 중원을 진동시키자 조조가 허도를 떠나 관우의 예봉을 피할 방법을 상의하였다. 이에 사마의와 장제는 손권에게 사람을 보내 동맹을 맺고 형주를 손권에게 다스리도록 할 것을 권하자 조조는 의견을 따랐다.
이 전에 손권은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에게 구혼하려고 사자를 보냈는데 관우가 사자를 모욕하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아 손권은 무척 화가 나있었다. 또한 남군 태수 미방이 강릉에 있고 장군 사인이 공안에 주둔했는데 평소 관우가 경시하였으므로 싫어 했다. 관우가 출병하자 미방과 사인이 군수물자를 맡고 있었는데 힘을 다해 돕지 않자 관우는 돌아가면 징벌할 것이라 하였다. 미방과 사인은 속으로 두렵고 불안했는데 손권이 유인하여 손권의 군대를 맞이하게 된다.
손권이 강릉을 점령하자 관우의 병사들과 처자식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고 관우의 군대를 흩어지고 말았다. 손권은 관우를 공격하고 관우와 아들 관평을 임저에서 참수한다. 유비는 관우의 시호를 장무후라고 하고 아들 관흥이 작위를 이었다.
[삼국지 연의]
[삼국지 정사]에서는 관우에 대해 기록이 너무 빈약하지만 [삼국지 연의]에서는 관우를 이와 같이묘사 하고 있다.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에서는 관우가 162년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고 고을의 악덕 지주를 살해했기 때문에 해현에서 추방되었다고 되어 있다. 외모는 신장 9척에 수염길이가 2자였으며 얼굴이 홍시처럼 붉고, 기름을 바른 듯한 입슬, 붉은 봉황의 눈, 누에가 누운 듯한 눈썹 등의 풍모로 묘사된다.
삼국지 연의에서 나오는 관우의 모습이다.
유비,관우,장비와 도원결의로 의형제를 맺었고 대장간에서 특수제작한 무게 82근이 나가는 청룡언월도를 지니고 다녔다. 이어 황건적의 난에서 유비를 따라 공을 세우고 유비가 안희현령이 되었다가 독우를 매질하여 도주하였을 때 같이 도망가기도 한다.
유비와 관우,장비가 정사에서는 도원결의를 맺었다는 이야기도 없다, 안희현령으로 독우를 매질 한 것도 유비가 직접 한 것이라고 되어있다.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자 유비,관우,장비는 공손찬의 휘하에서 병졸로 참전해 조조의 허락을 받아 술이 식기전에 화웅을 죽이는 장면이 묘사 된다.
실제로는 이와 같은 모습은 나오지 않고 정사에서는 손견이 죽이는 것으로 나온다.
공융이 황건적 관해에게 성이 포위되자 태사자가 직접 유비에게 원군을 요청하엿는데 이 때 관우와 관해가 90여합의 일기토 끝에 관해를 사살하고 공융을 구출한다. 이후 서주자사 도겸이 조조에게 공격 당하자 원군으로 유비를 따라 가는 한편 조조, 여포,원술등과 싸우기도 한다.
실제로는 유비가 직접 출병한게 아닌 태사자에게 병사 3천을 빌려주자 소식을 들은 관해가 포위를 풀고 도망쳤다. 또한 위의 내용처럼 정사에서 관우는 황건적,동탁,조조,여포,원술 등과 싸우는 장면들은 나오지 않는다.
유비가 조조 밑에 있을 때 허도에서 조조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 조조가 헌제의 활을 빌려 사슴을 쓰러뜨리는데, 헌제의 화살을 보고 모두 헌제에게 만세를 부르는 순간 조조가 헌제 앞을 가로막으며 환호를 받는다. 격분한 관우가 조조를 살해하려 하지만 유비가 말린다.
실제로도 정사에서는 한창 사냥을 하던 도중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관우는 유비에게 조조를 살해하라고 권했다곤 한다. 하지만 헌제 대신 만세를 받던 조조의 모습은 연의에서만 나온다.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살해하고 서주를 장악하고 관우는 하비성을 지켰는데 조조군에게 패배하여 관우는 붙잡히게 된다. 조조에게 항복할 때 관우는 조조에게 한 황실의 황제에게 항복한다, 유비의 부인을 보호한다, 유비의 생사가 확인되면 유비가 있는 곳으로 떠난다. 라는 조건을 내놓고 조조에게 항복한다. 이 항복을 권유한 사람은 장료인데 여포를 처형했을 때 부하였던 그를 구해준 것도 관우였다.
삼국지 정사에서는 항복할 때 위와 같은 조건은 나오지 않는다.
관우는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대치할 때 적장 안량, 문추를 죽인다. 조조가 관우를 잡기 위해 미녀와 갖은 재물을 내리는 한편 적토마를 주는 장면도 나온다. 이후 유비의 위치를 알게 된 관우는 유비를 향해 떠나는데 관우는 조조의 밑에서 유비에게로 떠나는 도중 5개의 관문을 돌파하고 6명의 장수를 참살한 오관참육장의 장면이 나온다.
관우가 안량은 죽인 것은 사실이나 문추는 치중대를 미끼로 한 순유의 책략에 빠져 서황 등이 습격하여 없앤 것으로 나오고 오관참육장은 삼국지 연의에서만 나온다.
유비와 재회한 관우는 유비를 따라 형주로 가게 되고 유표가 사망하자 유종이 항복을 하여 조조의 군대를 맞이하였는데 유비와 함께 강하태수 유기가 있는 곳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어 진군하는 조조군을 적벽에서 손권의 군대가 화공으로 조조의 군대를 궤멸시키자 조조군은 도주하게 된다. 도주하던 도중 화용도에서 관우와 대치하게 되는데 정에 얽메여 조조를 놓아주고 만다. 유비와 제갈량은 미리 일을 예측하고 있었고 제갈량은 “조조의 운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관우에게 의리를 갚게 해도 좋다”라고 말하여 관우를 출진시킨다. 관우가 조조를 놓아준 채 귀환하자 제갈량은 “서약에 따라 목을 치라”고 명령하는데 유비가 이를 가로 막는다. 이후 자존심이 센 관우는 제갈량에게 머리를 들지 못하게 된다.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는 장면은 연의에서만 나온다.
관우가 번성의 조인을 공격하자 우금과 방덕은 구원하러 왔는데 관우는 방덕과의 대결에서 팔을 크게 다쳐 부상을 입는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명의 화타가 그의 상처를 살폈는데 관우는 수술 중에 마량과 바둑을 계속 두면서 먹고 마셔 화타를 감탄하게 만든다.
삼국지 정사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화타가 치료한 것은 삼국지 연의에서 각색한 걸로 보인다.
이후 손권이 형주를 기습하는 내용은 유사하나 여몽의 심리전에 의해 군사가 와해되어 맥성으로 후퇴한 관우는 요화를 상용의 유봉과 맹달게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구원병은 오지 않았고 손권의 사자로 제갈근이 찾아와 손권에게 항복하여 함께 일하자 권유하지만 관우는 거절한다. 이후 조루의 건의에 따라 북문의 포위를 뚫고 익주로 가기로 하지만 곳곳에 매복된 오군의 습격을 받아 사로잡히고, 관우와 관평은 참수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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