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돈 원양 夏侯惇 元讓]
하후돈의 자는 원양이며 패국 초현 출신이다. 출생년도 미상이지만 220년에 사망한다. 하후돈은 전한시대 하후영의 후예로 14세 때 스승을 따라 배웠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스승을 모욕하자 살해한다. 이 후 강직한 기개가 알려지기도 했지만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로도 알려졌다.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날 때 조조가 거병하자 팔촌 동생인 하후연과 동참하여 비장이 되며 조조를 따른다. 청주의 황건적이 연주로 쳐들어오자 조조의 밑에서 그들을 함께 토벌하였는데 그 중 무예가 출중한 자들을 선발하여 청주병이라는 부대를 만든다. 이를 하후돈이 지휘하게 되었는데 하후돈의 아우인 하후연과 사촌동생 조인보다 군 통솔에 미흡하여 청주병 관리에 빈틈이 있었다 한다.
조조가 도겸 정별에 나서자 하후돈은 복양을 수비하는 책임을 맡는다. 하지만 장막과 진궁이 배신하여 여포를 맞아들이는데 하후돈은 견성에 있는 조조의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경무장한 군사를 이끌고 성으로 향한다. 도중에 여포군과 마주쳐 교천할 처지가 된다. 여포는 철퇴하여 복양에 입성하고 하후돈의 군수 물자를 약탈한다. 그 뒤로 장수를 파견하여 항복하는 것처럼 꾸미고 하후돈을 체포하여 인질로 삼는다. 그리고 재물을 내놓으라고 하후돈의 군사들을 협박하지만 부하 한호가 “국법에 따라 인질에 관계 없이 적을 죽이겠다”라고 말하고 전군에 공격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겁먹은 적에 의해 무사히 석방된다.
조조가 서주에서 돌아오자 하후돈도 여포 토벌에 나서는데, 전투 도중에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왼쪽 눈을 잃고 만다. [삼국지 연의]애서는 여포의 부하 고순이 소패의 유비를 공격하자 조조가 구원하기 위해 하후돈을 파견하는데 이 때 여포의 장수 조성에게 왼쪽 눈에 화살을 맞는걸로 나온다. 하후돈은 화살과 함께 눈알을 빼낸 뒤 “이 눈은 부모한테서 물려 받은 소중한 것이니 버릴 수 없다”고 말하며 눈을 집어삼키고, 적장 조성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였다고 나온다.
하후돈이 한 눈을 잃고 군사들은 애꾸눈 하후라고 불렀는데 본인은 이 것을 싫어하여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땅에 거울을 던졌다고 한다. 후일 진류,제음 태수를 담당하고 건무장군에 임명되고 고안향후에 봉해진다. 당시 심한 가뭄과 메뚜기의 의한 재해가 일어나지만, 하후돈은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흙을 운반하고 하천을 막아 둑을 쌓았다. 또한 군사들을 인솔하여 모내기를 하였으므로 그곳 백성들은 모두 기아에서 벗아나게 한다.
하후돈은 하남윤으로 임명되었고,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할 때에는 대장군이 되어 후방 부대를 맡았다. 업성이 함락되자 복파장군으로 승진했지만 여전히 하남윤을 맡았고, 법령에 구속받지 않고 자기 판단으로 행정을 관장하는 것을 허락 받는다.
216년 (건안 21년)에는 조조를 따라 손권 정벌에 종군하였고 조조는 하후돈을 26군의 도독으로 삼아 거소에 머물게 했다. 219년에는 조조는 군대를 마피에 주둔시키고 하후돈을 불러 항상 수레에 함께 타고 행동했으며, 특별히 친근하게 대하고 존중하여 침실까지 출입하도록 하였다. 다른 여러 장수 중에서 하후돈 만큼의 대우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하후돈은 전장군이 되고 군영을 옮겨 소릉에 주둔하였다. 조조가 사망하고 조비가 왕이 되자 하후돈을 대장군으로 임명하였으나 몇 개월 후에 세상을 떠났다. 하후돈은 진영에 있으면서도 스승을 불러 친히 강의를 들었고, 성격은 청렴하고 신중했다. 남는 재물이 있으면 곧 사람들에게 베풀었고, 부족하면 관청에서 도움을 받았으며, 재산관리를 일로 삼지 않았다.하후돈이 사망하고 시호는 충후이며, 아들 하후충이 후사를 이었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조조의 군에서 제일 가는 무장의 이미지가 많이 떠오르게 하는데, 반동탁 연합군 때 동탁군과 변수에서 싸워 서영군에게 패배해 조조와 조홍은 도주하는데, 하후돈이 하후연과 함께 달려와 서영을 죽인다.
그 후에도 서주의 도겸을 토벌하는데 참가하고 복양의 침입한 여포와 싸운다. 헌제가 이각 곽사에게서 탈출하자 낙양으로 향해 이각, 곽사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장수 정벌 때 점령한 완성에서 장수의 배신으로 화공을 당한데다가 부하 청주병들이 민가에서 약탈을 하여 우금에게 살해당하고 군의 통솔 문제로 질책을 당하기도 한다.
여포 토벌 중에 여포의 장수 조성의 화살에 왼쪽 눈을 맞았지만 조성을 죽이는 용맹함도 나온다. 여포가 멸망한 후 조조 암살계획에 가담한 유비가 서주에서 배신을 하자 유비를 격파하고 하비의 관우를 공격하는데 선봉이 된다. 관우가 유비의 소재를 알고 돌아가는 중 5관문에 6명의 장수를 죽이자, 그를 추격하려고 하지만 장료의 의해 제지된다.
관도 전투에서는 조조가 오소의 군량고를 습격하고 있을 무렵 본진을 지키며 원소군을 격퇴시킨다. 후에 신야의 유비를 공격할 때 박망파에서 제갈량의 화공에 당해 완패하였고 적벽 전투에서도 패배하고 양양을 수비할 때 자군의 병부를 잘못 알고 제갈량에게 성을 내주는 등 제갈량을 돋보여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관로가 조조에게 “오는 봄 허도에서 화재가 난다”라는 예언을 하였는데 조조가 하후돈에게 순찰을 돌도록 명령하고 방화를 사전에 밤지하여 경기,위황의 반란을 진압한다. 한중에서 유비와의 전투에서는 조조의 “계륵”이란 말을 들은 양수가 돌아갈 채비를 병사에게 명하여 철수준비를 하다가 하마터면 조조에게 참수될 뻔 한다. 하후돈은 조조의 임종을 보러 가는 도중 복황후 등의 영령을 보고 기절하여 병상에 눕고,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는 걸로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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