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공기 張魯 公祺]
장로의 자는 공기이며 패국 풍현 사람이다. 출생년 미상이나 216년에 사망했다. 장로의 조부 장릉은 오두미도의 계승자로 촉군에 몸을 의탁하였다. 장릉이 사망한 후에는 아들 장형이 계승하였고 장형이 사망하였을 때에는 장로가 이를 계승 하였다.
익주목 유언은 장로를 독의사마에 임명하고 별부사마 장수에게 군대를 이끌고 한중태수 소고를 공격하게 하였다. 장로는 장수를 살해하고 그의 군세를 탈취하여 한중을 수중에 넣는다. 유언이 사망하고 유장이 익주목이 되었는데 장로가 유장에게서 독립하자 유장은 장로의 어머니와 식구들을 모두 죽였다.
장로는 한중을 점령하여 스스로를 사군이라 칭하였고 도술을 익히는 사람을 귀졸이라 불렀다. 본격적으로 도술을 받는 사람을 좨주라 하고 좨주들은 부하를 인솔하였는데 그 수가 많으면 치두대좨주가 되었다. 좨주는 신자들을 통솔하여 의사를 설치하여 쌀과 고기를 놓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먹도록 했으나 필요 이상으로 탐하는 자에게는 도술을 걸어 병이 들게 했다고 한다. 장리를 두지 않고 좨주가 다스렸으며 장로는 한중과 파군에서 30년간 웅거 하게 된다.
후한 조정에서는 장로를 정벌할 힘이 없어 장로를 진민중랑장으로 삼고 한녕태수를 겸임하게 하였으나 장로는 공물을 헌상하여 의무만을 다하였다. 백성 중에 땅에서 옥인을 파낸 자가 있어 부하들은 장로를 한녕왕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염포의 반대 진언으로 장로도 이를 수용한다. 한수와 마초가 조조와 대치하였을 때 피난민 수만명이 자오곡을 건너 장로에게 갔다.
215년 (건안 20년) 조조는 산관에서 무도로 나아가 장로를 정벌하러 떠나 양평관에 도착한다. 장로는 한중을 바치고 항복하려 했지만 동생 장위가 수긍하지 않고 수만 군대를 이끌고 양평관에서 대치한다. 하지만 양평관에서 장위가 패배하고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장로는 다시 항복하려 하였다. 염포는 “급박하게 투항하면 공로가 적을 것이니 박호로 달아나서 항거하다 귀순해야 공로가 클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로는 파중으로 들어갔고 주변에 사람들이 진귀한 보물을 쌓아 놓은 창고를 불지르려 하였지만 장로는 “국가의 재물”이라 하며 창고를 굳게 닫아버린다.
장로는 결국 항복하고 조조는 그를 영접하여 진남장군으로 삼았으며 낭중후에 봉하였고 식읍 1만호를 주었다. 장로의 다섯 아들과 염포를 열후로 삼았으며, 아들 조팽을 장로의 딸과 결혼 시킨다. 이어 장로가 사망을 하였는데 시호를 원후라 했다. 아들 장부가 작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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