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연 묘재 夏侯淵 妙才]
하후연의 자는 묘재이며 패국 초현 출신이다. 생년 미상이나 219년에 사망한다. 하후돈의 사촌동생이며 아내는 조조의 고종사촌 누이동생이라 한다. 조조가 고향에 있을 때 현관(관청)에서 일을 저질렀는데 하후연이 조조를 대신하여 중죄를 받았다. 나중에 조조가 방법을 강구하여 하후연을 구출해낸다.
반동탁 연합군이 창설 될 때 조조가 거병하자 그를 따라 가담하였으며 하후연은 별부사마와 기도위로 임명하여 수행하였다. 이후 진류태수와 영천태수가 되었다가 관도에서 원소와 싸울 때 독군교위를 대행하도록 하였다. 원소를 격파한 뒤에는 연주,예주,서주의 군량미를 담당하였는데 식량이 부족했지만 하후연은 끊임 없이 운송하여 군대의 사기가 진작되었다.
창희가 모반을 일으키자 우금을 파견하였는데 우금이 고전하자 하후연을 보내 협력하도록 하였다. 하후연은 우금과 함께 창희를 격파하고 창희 역시 우금을 만나 투항 하였다. 이 공으로 하후연은 전군교위에 임명된다. 또한 황건적 서화,사마구가 난을 일으키자 하후연은 진압하고 서화를 참수하였으며 식량을 거두어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209년 (건안 14년)에 행령군으로 승진하였다. 하후연은 여강군의 뇌서를 공격하여 격파하였고 정서호군의 직책을 대행해 서황을 지휘하여 태원군을 공격하고 우두머리 상요를 참살한다. 211년 동관 전투 때에는 위남에서 한수와 싸웠으며 주령을 지휘하여 유미와 견저를 평정했다. 조조와 안정에서 합류하여 양추를 항복 시킨다.
212년 (건안 17년) 호군장군을 대행하고 주령,노초등을 거느리고 장안에 주둔한다. 남산의 도적 유웅을 격파하고, 한수와 마초의 잔당인 양홍을 무찌르고 참살한다. 마초가 기현에서 양주자사 위강을 포위하여 하후연은 위강을 구하려 했지만 도착하기전에 위강이 패배하였다. 마초가 맞아 싸웠으나 하후연은 전세가 불리하였는데 견저에서 마초에게 호응하고 반란이 일어나자 하후연은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이끌고 돌아간다.
214년 (건안 19년) 조구,윤봉 등이 마초를 살해하려고 모의하고 강서가 노성에서 군사를 일으켜 호응하자 조구등은 마초를 속여 강서 공격에 나서게 만든 후 마초의 처자를 살해하고 한중으로 몰아낸다. 강서 등이 하후연에게 급히 구원을 요청 하여 받아들였다. 여러 장수가 조조의 지시를 기다리자 하였지만 하후연은 “조공은 업에 계시고 왕복 4천리가 된다. 장군의 재가를 받았을 때에는 강서 등은 패하고 말 것이다”라고 말하고 출진하여 마초를 격파한다.
그 때 한수는 현친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여러 장수들은 한수를 공격하거나 흥국성의 저족을 공격 하는 쪽으로 갈렸다. 하후연은 한수의 군사가 정예이고 흥국성이 견고하므로 단기간에 함락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생각했고 장리 일대의 한수 휘하의 강족들이 있어 강족들을 공격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 했다. 하후연은 장리를 공격하여 한수를 불러들이고 격파하였다. 그 기세를 몰아 흥국성을 공격하여 저족 왕 천만은 마초에게 도주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항복을 받았다. 하후연은 군사를 돌려 고평현의 도각족을 공격하니 모두 도주하였다. 이 공로로 하후연은 조조로부터 서방에 진무하도록 하였다.
포한의 강왕 송건은 양주의 혼란을 틈타서 평한왕이라고 칭하였다. 조조는 하후연에게 명하여 토벌하도록 하였고 하후연은 포한을 포위하고 한달만에 성을 함락시켰다. 하후연은 별도로 장합에게 군사를 주어 하관을 평정하고 황하를 건너 소황중에 진입했는데 하서에 있던 강족의 여러 부족에 항복하고 농우가 평정되었다.
216년 (건안 21년) 하후연은 장안으로 돌아와 하변에 있는 저족과 강족을 공격하였다.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정벌할 때 하후연은 양주의 모든 군세를 이끌고 합류하였다. 강족과 호족을 만날 때 하후연을 앞세우면 모두 공포에 떨었다. 장로가 항복하자 하후연은 도호장군이 되었고 장합,서황을 이끌고 파군을 평정한다. 조조는 돌아가면서 하후연에게 한중 수비를 맡기고 정서장군으로 임명한다.
218년 (건안 23년) 유비가 군사를 이끌고 양평관으로 쳐들어 오자 하후연은 여러 장수를 통솔하여 대치하게 된다. 219년에 유비가 야습을 하여 하후연의 진영을 포위하고 불을 질렀다. 하후연은 동쪽을 장합에서 수비를 맡기고 자신은 남쪽 수비에 나섰는데 장합이 패배하여 자신의 병사 절반을 보내 장합을 구원하게 하였다. 하지만 유비군의 맹공으로 황충에게 패배해 죽는다.
하후연이 사망하고 시호를 민후라 하였고 맏아들 하후형이 작위를 이었다. 하후형은 조조의 동생 해양애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조조에게 두터운 은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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