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제갈량의 자는 공명이며, 낭사군 양도현 출신이다. 181년에 태어나 234년에 사망한다. 제갈량의 별호는 와룡 또는 복룡이라 불리운다. 제갈량은 전한시대 사예교위 제갈풍의 후예로 아버지 제갈규는 태산군의 승을 지냈다. 제갈량이 어려서 아버지 제갈규를 여의고 작은아버지 제갈현은 원술에 의해 예장태수로 부임하자 제갈량과 동생 제갈균은 함께 따라가게 된다.
그 후 한나라 조정에서 주호를 예장태수로 임명시키자 제갈현은 평소 형주자사 유표와 친분이 있어 그를 의탁하게 된다. 제갈현이 사망하자 제갈량은 농사를 지으며 “양보음”을 부르며 주경야독을 하였다. 제갈량은 늘 자신이 관중과 악의와 같은 인물이라 비유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았고 최주평과 서서만이 인정해 줄 뿐이었다.
그 무렵 유비는 신야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서서는 유비를 모시면서 제갈량에 대해 “억지로 데리고 올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을 세 차례나 만나 겨우 만날 수 있었는데 이를 “삼고초려”라고 한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에 대해 주장하며 계속 친분을 쌓게 된다. 관우와 장비는 제갈량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유비는 “나에게 공명이 필요한 것은 바로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한 것과 같다”고 말하며 관우와 장비를 설득하였다. 이 때 수어지교라고 하는 것도 이 고사에서 비롯 된다.
유표의 맏아들 유기도 제갈량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유표가 후계자로 작은아들 유종을 선택하려하였다. 유기는 늘 제갈량에게 자신에게 안전하게 할 방법을 상의하려 하였는데 제갈량은 번번히 유기의 상의를 번번히 거절하였다. 유기는 제갈량을 데리고 후원을 구경하며 거닐다가 함께 높은 누각에 올라 연회를 여는 사이에 사람들에게 사다리를 치우게 하고 기회를 틈타 이야기하였다. 유기가 상의를 하자 제갈량은 “나라안에 있다 위험에 처하는 것 보다 나라 밖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이야기 하였다. 유기도 마음속으로 생각하다 마침 강하태수 황조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강하 태수가 되었다.
208년 (건안 13년)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려 할 때 유표가 사망하자 작은아들 유종이 후계를 잇게 된다. 하지만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유비는 번성에서 이 소식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갔는데 제갈량과 서서가 함께 그를 따랐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유종을 공격하고 형주를 지배할 것을 진언하지만 유비는 거절하고 도망친다. 조조군의 추격으로 서서의 어머니가 포로로 붙잡히자 서서는 유비를 떠나 조조에게 간다. 유비가 하구까지 도망가자 제갈량은 손권과 동맹을 맺을 것을 진언하고 유비는 그 말을 따랐다.
제갈량은 손권이 있는 시상으로가서 손권을 설득하고 조조와의 싸움을 결단하게 만든다. 손권은 유비와 동맹을 맺고 주유,정보,노숙 등 수군 3만명을 보내 유비가 있는 곳으로가 조조에게 맞서게했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적벽에서 조조의 군대를 격파하고 유비는 강남지역을 다시 되찾게 된다. 유비는 제갈량을 군사중랑장에 임명하고 영릉,계양,장사 3군을 다스리게 하는 한편 세금을 조달하여 군용물자를 충당하게 한다.
211년 (건안 16년) 유장의 부하 법정,장송이 유비를 촉의 군주로 맞아들이려 계획하고 장로를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구원을 요청한다. 유비가 방통과 함께 익주로 들어가자 제갈량은 관우와 함께 형주를 지키게 된다. 하지만 장송의 내통사실이 들어나자 유비와 유장은 적대관계가 되는데 방통이 전사하는 등 유비는 고전하게 된다. 이에 제갈량은 형주 수비를 관우에게 맡기고 장비와 조운 등과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 강에 가까이 있는 여러 군현을 나눠 평정하고 유비와 함께 성도를 포위한다. 214년 성도가 평정되자 제갈량은 군사장군,좌장군부사로 임명된다. 유비가 출정할 때 제갈량은 늘 성도에 남아 지키면서 식량과 군수물자를 조달한다.
223년 (장무 원년) 유비가 황제에 오르자 제갈량은 승상에 임명된다.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 오나라로 출병하려 하였을 때 장비가 사망하였는데 이 때 사예교위를 겸하게 된다. 223년에 유비가 손권의 장수 육손에게 패배하고 영안에서 중태에 빠지게 된다. 유비는 제갈량을 불러 후사를 부탁하고 유선에게 제갈량을 아버지처럼 모실 것을 유언하였다.
223년 (건흥 원년) 유선이 유비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자 제갈량은 무향후로 봉해지고 익주목도 겸하게 된다. 유비 사후 남중의 여러 군현이 한꺼번에 반란을 일으키는 등의 일이 있지만 제갈량은 국상 중이라 함부로 토벌하지 못하였다. 우선 제갈량은 오나라에 사자를 보내 화친을 맺어 다시 동맹을 맺는다. 이어 225년에는 남중을 정벌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새로 평정한 군현에서 풍부한 군수물자를 확보하여 나라가 풍요로워졌다.
227년 (건흥 5년) 제갈량은 군사들을 이끌고 한중에 주둔하여 위 정벌을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 제갈량은 출사표를 올리고 출발하여 면양에 주둔한다. 228년에 제갈량은 야곡도를 지나 미현을 공격하는 한편 조운과 등지에게 기곡에 진을 세우게 하였는데 위나라에서 대장군 조진을 파견하며 대치한다. 제갈량이 기산을 공격하자 남안,천수,안정 3군이 호응하고 강유가 제갈량에게 귀순한다. 위나라 명제 조예는 장안에 주둔하며 장합을 보내 제갈량을 막도록 하였다. 제갈량은 마속을 보내 가정에서 장합과 싸우게 하지만 마속은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고 싸우다 장합에게 대패한다. 제갈량은 한중으로 돌아와 마속을 참수하고 자신의 패배로 세 등급 지위를 낮출 것에 대해 상소를 올린다. 유선은 제갈량을 우장군으로 삼고 승상 직무를 대행하도록 하였다.
이어 같은해 제갈량은 산관을 지나 진창을 포위했지만 조진이 막자 제갈량은 식량이 떨어져 퇴각하고 만다. 이 때 위나라 장수 왕쌍이 추격하였지만 제갈량은 싸워 물리치고 왕쌍의 목을 벤다. 229년 제갈량은 진식을 보내 무도,음평을 치게 하였다. 옹주자사 곽회가 진식을 쫓아오자 제갈량은 건위에서 물리치고 두 군을 평정한다. 이 공으로 유선은 제갈량을 승상으로 복직 시킨다.
231년 (건흥 9년) 제갈량이 다시 기산을 공격하였는데 식량이 떨어져 철수한다. 장합이 추격하였는데 제갈량은 장합을 사살한다. 234년에 제갈량은 야곡을 지나 무공현 오장원을 점령하고 사마의와 위남에서 대치한다. 제갈량은 식량 공급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수 해안가에서 병사들에게 둔전을 시킨다. 제갈량과 사마의가 대치한지 100여일이 지나자 제갈량은 병들어 진중에서 54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제갈량은 임종할 때 한중의 정군산에 묻어 달라하였다.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이 작위를 이어 받았다.
[삼국지 연의]에서도 대부분 비슷하나 다른 부분이 있다면 서서가 자신의 모친으로 인해 조조에게 갈 때 유비를 떠나면서 제갈량을 소개하는 것으로 나온다. 제갈량이 유비를 섬길 때 박망파에서 하후돈의 군대를 화공으로 무찌른다.
적벽전투 때에는 주유가 화살 10만개를 만들라고 하자 제갈량은 안개 짙은 날 조조 진영으로 떠나는데 조조의 군대는 적이 습격하는 줄 알고 화살을 비오 듯이 쏘아댄 덕분에 제갈량은 화살 10만 개를 얻어 돌아온다. 또한 동남풍을 불게 하기 위해 남병산에 칠성단을 만들어 기문둔갑술로 동남풍을 불게 해 적벽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남만에서 반란이 일어날 때 맹획을 7번 잡아 7번 풀어주어 심복으로 만드는 한편 목록대왕에게 입에서 유황 연기를 내뿜는 목조 당사자로 대항하기도 한다. 올돌골의 등갑병을 화공으로 불태워 죽인다. 노수에서 수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자 밀가루로 사람 머리 모양을 만들고 양고기를 넣어 대신 바치는 등 만두가 나오게 되는 장면도 있다.
북벌 중 오장원에서 사마의와 대치할 때 제갈량은 자신이 죽을 때를 알고 북두를 향해 기도한 뒤 7일간 불이 꺼지지 않으면 수명이 12년간 연장된다는 의식을 행한다. 하지만 6일째 되는 날 위군이 침공한다는 것을 알리러 온 위연이 등을 밟는 바람에 불이 꺼지고 만다. 제갈량이 사망할 때 강유에게 자신의 병법서를 주고 장완에게 후사를 부탁하며 자신의 별을 바라보면서 죽어간다.
'역사 > 삼국지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인물 71. 황권 공형 (0) | 2016.01.25 |
---|---|
삼국지 인물 70. 신비 좌치 (0) | 2016.01.25 |
삼국지 인물 68. 장개 (0) | 2016.01.24 |
삼국지 인물 67. 조덕 (0) | 2016.01.24 |
삼국지 인물 66. 사마소 자상 (0) | 2016.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