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 공형 黃權 公衡]
황권의 자는 공형이며 파서군 낭중현 출신이다. 생년은 미상이나 240년에 사망한다. 황권은 어려서 군의 관리가 되었으며 유주목 유장이 주부로 임명한다. 장송이 유비를 촉으로 불러들이려 할 때 황권은 유장에게 간하여 유비를 불러 들이는 것을 반대한다. 하지만 유장은 황권의 말을 듣지 않았고 좌천시켜 광한현의 장으로 삼았다.
유장과 유비가 적대관계가 되고 유비의 장수들은 군현을 나눠 공격하자 많은 군현들이 항복하였는데 황권은 성을 닫고 굳게 지킬 뿐이었다. 유장이 결국 항복하자 그때서야 유비에게 귀순한다. 유비는 황권을 편장군으로 임명하였을 때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공격해 장로가 도망쳐 파중현으로 들어간다.
황권은 한중을 잃으면 촉이 위험해 질 수 있다고 유비에게 진언하였고 유비는 황권을 호군으로 삼아 장로를 맞이하려 하였다. 하지만 장로는 남정으로 돌아가 조조에게 항복하였다. 유비와 조조가 한중을 두고 대치할 때 두호와 박호를 쳐부수고 하후연을 죽이고 한중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는 모두 황권의 계획이었다.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황권은 치중종사로 임명된다. 유비가 오나라를 정벌하려 할 때 황권은 유비에게 후방에서 머물기 바라고 자신이 선봉이 되어 적의 허실을 살피기를 간하였다. 유비는 듣지 않고 황권을 진북장군으로 삼아 직접 출병한다. 유비가 육손에게 대패하자 황권은 퇴로가 막혀 위나라로 가서 항복한다. 대신들은 황권이 위에 항복했기 때문에 그의 처자식을 체포해야 한다 했지만 유비는 자신이 황권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하며 황권의 식구들을 전과 같이 대해 주었다.
조비는 황권에게 후하게 대접하여 진남장군으로 임명하고 육양후로 봉했으며 시중을 더하였다. 위에 항복한 사람중에 황권에게 처자식이 살해당하였다고 말한자가 있었는데 황권은 그 말이 거짓인 것을 알고 가족의 장례를 치루지 않았다.
유비가 사망하자 위나라 대신들은 모두 기뻐하였지만 황권만은 기뻐하지 못했다. 조비는 황권이 도량이 있다고 판단하여 놀래키려는 생각으로 심문을 하기 위해 황궁으로 출두하라 하였다. 혼비백산한 그의 수하들과 달리 황권은 태연자약하였는데 이 일로 조비에게 신임을 얻고 익주자사를 겸하게 되었다.
239년 (경초 3년)에 황권은 거기장군, 의동삼사로 승진한다. 240년에 황권이 사망하자 시호를 경후라 하였고 아들 황웅이 뒤를 이었다. 촉에 남겨진 아들 황숭은 상서랑이 되어 위장군 제갈첨을 수행하였다.
'역사 > 삼국지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인물 73. 정의 정례 (0) | 2016.01.26 |
---|---|
삼국지 인물 72. 맹달 자도 (0) | 2016.01.25 |
삼국지 인물 70. 신비 좌치 (0) | 2016.01.25 |
삼국지 인물 69. 제갈량 공명 (0) | 2016.01.24 |
삼국지 인물 68. 장개 (0) | 2016.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