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달 자도 孟達 子度]
맹달의 자는 자경이었으나 후에 유비의 숙부 이름이 유경이었기 때문에 피휘하여 자도로 바꾸게 된다. 부풍군 출신이며 생년은 미상이나 228년에 사망한다. 후한의 양주자사 맹타의 아들로 기근을 피해 같은 군 출신 법정과 함께 촉으로 들어가 유장을 모시게 된다.
장송이 유비를 불러들여 한중의 장로를 토벌하려고 하자 유장은 법정과 맹달에게 각각 2천명의 군사를 주어 유비를 원조하도록 하였다. 맹달은 유비가 입촉하는데 큰 도움을 줬고 유장이 항복하자 의도태수에 임명 된다.
219년 (건안 24년) 맹달은 자귀에서 방릉을 쳐 태수 괴기를 죽였고 한중에서 내려온 유비의 아들 유봉과 함께 상용을 공격하여 태수 신탐의 항복을 받아낸다. 관우가 양양성을 포위하고 있을 모렵 맹달과 유봉에게 여러 차례 원군을 요청 하지만 상용을 겨우 종속시켜 불필요한 동요를 주고 싶지 않다 하며 원군을 거부한다. 거기다 유봉과 맹달은 서로 사이가 나빴는데 유봉이 맹달의 군대를 빼앗았는데 유비는 유봉을 석연치 않게 처분한다. 그러던 중 관우가 오나라에게 기습을 받고 패배하여 사망하였는데 유비는 이 소식을 듣고 유봉과 맹달을 증오하게 된다.
결국 맹달은 유비에게 화가 당할까 두려웠고 유봉에 대한 원한으로 결국 위나라에 항복하게 된다. 유엽과 사마의는 맹달이 충성심 없는 인물이라 하였지만 조비는 맹달의 재능과 용모를 좋아하여 산기상시로 임명하고 상용,방릉,서성 3군을 합쳐 신성군이라 만들었는데 이 곳의 태수로 삼았다. 그 후에도 맹달은 조비에게 총애를 받아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같이 마차를 동승해 맹달에게 “ 설마 유비의 자객은 아닐꺼야?”라고 농담하기도 할 정도였다.
맹달은 하후상, 서황과 함께 유봉을 공격하여 유봉에게 항복을 권하지만 거부하고 성도로 돌아갔다가 유비는 자결 명령을 내린다. 조비가 사망하고 조예가 즉위하자 조예는 맹달을 신임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스스로 불안에 떨고 있던 맹달의 모습을 알고 있던 제갈량은 이 점을 이용하여 여러 차례 서신을 보내 거병할 것을 요구하였다. 제갈량이 맹달에게 거짓 항복을 시킨 곽모는 맹달과 사이가 나쁜 위흥태수 신의에게 계획을 드러낸다. 신의는 사마의에게 밀고했고 맹달도 탄로 난 것이라 생각하고 서둘려 거병하려 했지만 사마의가 의심하지 않는다고 안심시켜 거병을 망설이게 된다. 사마의는 은밀히 군을 옮겨 8일만에 상용성에 이르렀고 16일간 성을 공격하니 맹달의 생질 등현과 장수 이보가 사마의에게 항복하였고 맹달은 참수되었다.
[삼국지 연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으나 최후에 항복을 권유하는 서황을 활로 쏴 죽이는 한편 사마의에 군대가 이르자 등현,신탐,신의가 배신하여 맹달을 죽이고 사마의에게 항복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역사 > 삼국지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인물 74. 정이 경례 (1) | 2016.01.26 |
---|---|
삼국지 인물 73. 정의 정례 (0) | 2016.01.26 |
삼국지 인물 71. 황권 공형 (0) | 2016.01.25 |
삼국지 인물 70. 신비 좌치 (0) | 2016.01.25 |
삼국지 인물 69. 제갈량 공명 (0) | 2016.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