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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266. 곽도 공칙

[곽도 공칙 郭圖 公則]

 

곽도의 자는 공칙이며 예주 영천군 출신이다. 생년은 미상이나 205년에 사망한다. 곽가와 같은 영천 곽씨 이나 곽가와는 어떠한 사이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영천군의 계리였으며 순욱, 순유 등과 영천태수 음수에게 발탁되어 조정에 천거되었고 뛰어난 재사로 이름을 빛냈다고 한다. 이후 동향인 신평과 함께 원소를 섬겼고 곽도는 고간, 순심 등과 함께 한복을 설득하여 기주를 원소에게 양보시키게 한다.

 

헌제가 장안을 탈출하여 하동에 있을 때 원소는 곽도를 사자로 파견하였고 곽도는 돌아와 원소에게 천자를 맞아 업현에 수도를 세우라고 권하였지만 원소는 듣지 않는다. 저수와 전풍은 조조에 대하여 지구전을 펼칠 것을 주장하지만 곽도와 심배는 함께 단기결전을 주장한다. 원소는 곽도와 심배의 의견을 따랐고 또한 곽도는 감군의 지위에 있는 저수의 세력이 큰 것을 견제하기 위해 감군을 3개로 분할하도록 하였다. 원소는 곽도의 말을 듣고 저수, 곽도, 순우경을 각각 도독으로 임명시킨다.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할 때 곽도, 순우경, 안량을 파견하여 백마에 있는 동군태수 유연을 공격하게 하였다. 조조가 관도대전 후반에 오소의 군량기지를 습격하자 곽도는 조조의 본진을 공격할 것을 진언하였다. 장합은 오소를 지켜야 한다고 하였는데 원소는 곽도의 의견을 받아들여 장합에게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게 하였다. 오소의 군량기지를 방어하던 순우경이 궤멸하자 곽도는 그 책임을 장합에게 떠밀었다. 장합은 궁지에 빠지자 조조군에 항복한다.

 

원소가 관도에서 패배하고 후계자를 결정짓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하였다. 심배와 봉기는 신평과 곽도와 권력을 다투었는데 심배와 봉기는 삼남 원상을 지지하는 한편 곽도, 신평은 장남 원담을 지지하였다. 사람들은 원담이 장자이므로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 주장하였다. 심배 등은 원담이 옹립된 후 곽도, 신평 등이 자신들을 해칠까 두려워 원담이 청주로 돌아오기 전에 원상에게 원소의 지위를 물려받게 하였다. 원담은 후계자 지위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거기장군을 칭하게 되었고 원담과 원상의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원담은 여양에 주둔하였는데 조조는 북상하여 원담을 공격하였다. 원담은 원상에게 군사를 청하였지만 원상은 군사를 매우 적게 주었다. 또한 봉기를 파견하였지만 화가 난 원담은 군사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하여 봉기를 죽인다. 원상은 군사를 줄 경우 오히려 자신을 공격할 것을 두려워하여 심배에게 업성을 지키게 하면서 자신 스스로 여양으로 지원을 갔다. 원담과 원상은 조조에게 크게 패하였고 조조는 원상과 원담의 내분을 부추기기 위해 군대를 물려 형주를 공격하였다. 이 때 원담과 원상은 서로 공격했고 원담은 패배하여 평원으로 달아났다.

 

곽도는 원담은 형세가 불리해지자 조조에게 항복하고 그 힘을 빌려 원상을 무너뜨린 뒤 원상의 세력을 흡수하여 조조와 힘을 합치라고 하였지만 원담은 듣지 않는다. 원담은 원상에게 계속 패배하여 점점 불리해지자 결국 곽도의 진언을 받아 조조에게 항복한다. 이로 인해 원상은 패배하였고 심배는 원담에게 서신을 보내 곽도를 죽이고 조조와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였지만 원담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조조가 업성을 포위하는 사이 원담과 곽도는 기주를 공격해 크게 세력을 확대하고 감릉,인평,발해,하간을 공략하여 취한 후 중산에 있는 원상을 공격하였다. 결국 업성이 함락되고 심배는 사로잡혀 참수당하고 원상은 유주에 있는 차남 원희에게로 도망간다. 원담은 원상의 군대를 모두 거둬들이자 조조는 원담을 공격하였는데 원담은 평원을 공격하고 남피를 병합한 후 용주에 주둔하여 대항하였지만 원담과 곽도는 남피에서 조조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