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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51. 순욱 문약

[순욱 문약 荀彧 文若]

 

순욱의 자는 문약이고 영천군 영음현 출신이다. 163년에 태어나 212년에 사망한다. 순욱의 가문은 명문 출신으로 조부 순숙, 부친 순곤, 숙부 순상등이 모두 이름이 높았다. 순욱이 나이가 어렸을 때 남양의 하옹이 순욱에게 제왕을 보좌할 재능을 갖고 있구나라고 하였다. 순욱은 용모가 수려하고 체구가 컸다고 한다.

 

189 (영한 원년) 순욱은 효렴으로 천거되었고 수궁령에 임명된다.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자 외직으로 나가길 원하였고 항보현의 영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금방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촌로들에게 영천은 사방으로부터 공격받기 좋은 곳이기 때문에 피신할 것을 권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결정을 못하고 순욱은 홀로 가족을 데리고 한복의 호의를 받아 기주로 간다. 기주에 도착했을 때 원소가 이미 기주를 장악하였지만 한복은 순욱을 최상급 손님의 예로써 대우하였다. 순욱과 동생 순심을 비롯해 같은 군 출신 신평과 곽도는 모두 원소에게 임용되었다. 순욱은 원소의 인물됨을 헤아리고 큰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알고 원소를 떠나 조조에게로 간다.

 

191 (초평 2) 조조는 순욱을 보고 나의 장자방 이로다라고 하였고 사마에 임명한다. 194년에 조조가 도겸을 정벌하러 가면서 순욱은 남아서 연주를 지켰다. 장막과 진궁이 여포를 맞이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순욱은 즉시 군대를 정비하고 동군태수 하후돈을 불러들였다. 연주의 대부분 군과 현은 여포에게 호응하였고 조조가 도겸을 정벌하면서 대부분의 병사들을 데리고 갔기 때문에 지키는 병력이 적었다. 더구나 병사를 감독하는 장수와 상급 관리 대부분이 장막과 진궁에게 내통하자 하후돈은 반란에 공모한 수십 명을 처형하자 모두들 평정되었다.

 

예주자사 곽공이 병사 수만을 이끌고 지원하러 왔는데 곽공이 여포와 이미 공모하고 있다라는 말에 모두들 불안해 하였다. 순욱은 나가서 곽공을 만나 중립을 지키게 하였고 범현, 동아현 우두머리를 정욱에게 설득시킨 후 세 성을 확보하여 조조가 귀환하기만을 기다렸다. 서주에서 돌아온 조조는 복양에서 여포를 격퇴했다. 195년 도겸이 죽은 후 조조는 서주를 공략하고 되돌아와 여포를 평정하려 했다. 순욱은 여포의 평정을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워 충분히 곡물을 축적한 다음 여포를 몰아내고 연주를 평정했다.

 

196 (건안 원년) 헌제가 하동에서 낙양으로 귀환하자 순욱은 헌제의 신병을 옹호하며 허현에 수도를 정할 것을 권유한다. 조조는 낙양으로가 헌제를 옹호하여 허현에 수도를 삼고 허도라 하였다. 헌제는 조조를 대장군으로 삼고 순욱을 시중으로 승진시킨 후 상서령을 대신하도록 했다. 순욱은 항상 마음을 치우침이 없이 바르게 하고 엄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조조는 정벌 중에도 군사나 국정에 관한 일은 언제나 순욱에게 논의했다. 순욱은 순유,종요,희지재,곽가 등을 추천하기도 하였고 이들은 모두 유능한 인재였기 때문에 조조는 언제나 순욱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한다.

 

198 (건안 3) 조조가 장수와 여포를 제압하고 원소와 대치하게 되었는데 공융은 순욱에게 원소는 강대하고 지략이 뛰어난 선비가 있고, 안량,문추는 삼군을 다스릴 수 있는 용장이라 이기기 힘들다라고 말하였다. 순욱은 원소가 많은 군사를 거느렸으나 군법이 정비 되있지 않고, 심배는 독단적이고, 봉기는 과단성은 있지만 스스로의 판단을 따르고, 허유와 가족들은 법을 위반하다보니 관용을 베풀지 않으면 배신할 것이고, 안량과 문추는 필부의 용맹일 뿐이니 한번의 전투로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200 (건안 5) 조조와 원소는 계속해서 싸웠는데 조조가 관도성을 지키자 원소는 그 주위를 포위했다. 조조는 군량미가 떨어지고 지친마음에 순욱에게 편지를 보내어 허도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순욱은 조조를 격려해 조조가 관도에 머무르게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순욱의 예상대로 허유의 가족이 법을 위반하여 심배가 허유의 처자식을 체포하였는데 허유는 배반하여 오소를 습격할 것을 조조에게 권유하니 원소는 크게 패하였다. 또한 안량과 문추가 목이베이고, 전풍이 간언하다가 원소에게 처형 당하는 일도 순욱이 예상한대로 되었다. 203년에 순욱은 만세정후에 봉해진다.

 

207 (건안 12) 조조는 유표를 토벌하기에 앞서 순욱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순욱은 하북이 평정되었기 때문에 유표는 자신의 곤궁함을 알 것입니다. 완성과 섭 땅에 출병한 후 가볍게 무장한 병사를 보내면 유표는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엄습을 받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순욱의 예상대로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떠났는데 유표가 세상을 떠나고 유표의 아들 유종은 형주에서 항복하였다.

 

212 (건안 17) 동소 등이 조조의 작위를 국공으로 승진시킬 것을 획책하자 순욱은 한 왕조의 부흥을 원했기 때문에 이에 반대한다. 이로 인해 조조와 순욱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고 순욱은 조조에게 불만을 갖게 되었다. 조조가 손권을 토벌하러 갔을 때 순욱을 초현에 남겨 군사들을 위로하게 하였다. 조조가 유수에 도착했을 때 순욱은 수춘에 머물다가 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다음해 조조는 위공에 임명되고 순욱의 아들 순운이 작위를 계승하였다. [삼국지 연의]에서도 대부분 비슷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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