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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56. 조운 자룡

[조운 자룡 趙雲 子龍]

 

조운의 자는 자룡이고 상산군 진정현 출신이다. 생년 미상이나 229년에 사망한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원소의 부하였지만 스스로 공손찬 밑으로 달려가 공손찬을 구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삼국지 정사]에서는 공손찬의 부하였던 것이 시작으로 나온다.

 

조운은 키가 8척이었고 모습과 얼굴 생김새가 두드러져 근사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공손찬과 원소와의 계교전투에서 공손찬이 유비를 전해에게 보내 원소와 맞서게 했는데 조운은 유비를 수행하여 기병으로 종군한다. 유비는 조운을 높게 평가하고 서로 깊은 유대를 맺었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조운이 유비의 가신이 되고 싶다 하지만 유비는 공손찬과의 관계를 고려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해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한다.

 

그 뒤 조운은 형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잠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절대로 당신의 은덕을 잊지 않겠다고 유비에게 말하였다. 이는 조운이 공손찬의 밑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점을 암시하였는데 유비 또한 그 것을 깨닫고 마음을 담아 악수를 하고 조용히 전송했다고 한다.

 

조조에게 배신하고 서주를 장악한 유비가 조조에게 패하자 원소에게로 달아났는데 조운은 유비를 접견하고 부하로 맞이한다. 연의나 정사에서 조운도 관우와 장비처럼 똑 같은 대우를 받았다. 조운은 유비를 따라 유표가 지배하는 형주로 갔다.

 

유비가 형주에 왔을 때 후계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유표가 죽고 막내 아들 유종이 후계를 이었다. 당시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였는데 유종은 항복하고 유비는 피난길을 떠나게 된다. 유비가 조조에게 당양의 장판까지 추격당하여 처자식을 버리고 달아났을 때 조운은 단신으로 적군 한가운데로 달려가 도망가지 못한 유선과 감부인을 구출한다. 이 공으로 아문장군으로 승진 한다.

 

조운이 적진에 달려들어간 당시 조운이 아군을 배신하고 조조에게 항복했다고 유비에게 말한자가 있었으나 유비는 자룡은 결코 우릴 버리고 도망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조운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이 때 조조의 장수 하후은을 죽여 청강검을 손에 넣고 유선을 가슴에 품은 채 적군 한가운데에서 분전하자 조조는 조운을 생포하려 하였다. 그 결과 조운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유비가 촉으로 들어갈 때 조운은 형주에 남았는데 유비가 가맹에서 돌아와 유장을 치고 제갈량을 불렀다. 제갈량은 조운과 장비 등을 데리고 장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가면서 군현을 평정했다. 강주에 이르자 조운에게 따로 물을 지나 강양으로 올라와 성도에서 제갈량과 합류하도록 명령 받고 제갈량, 유비와 함께 성도를 포위한다. 성도가 평정된 다음 조운을 익군장군으로 삼았다.

 

219년 한중 쟁탈전에서 조운은 조조 대군을 격파하지만 조조군은 다시 병사를 모으고 군세를 강화해 조운의 진영까지 추격해 온다. 조운은 문을 활짝 열고 깃발을 숨기고 북을 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적 진영에 도착한 조조군은 복병이 있을까 의심되어 퇴각하였는데 그 것을 본 조운은 북을 치도록 지시하고 쇠뇌를 쏘아 배후에서 조조군을 공격하자 적은 혼란에 빠지고 수많은 사상자를 낸다. 다음 날 유비는 조운의 진영을 방문하고 전날의 전장을 시찰하면서 자룡의 몸은 모두 간덩이로구나하고 칭찬하자 군졸들은 조운을 호위장군이라고 불렀다.

 

손권이 형주를 습격하여 관우를 살해하자 유비는 크게 노하여 손권을 공격하려 한다. 이 때 조운은 국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니다. 먼저 위를 멸망시키면 오는 자연히 굴복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만류하였지만 유비는 듣지 않고 손권과 싸우러 간다. 조운은 후방에 남아 강주를 지켰는데 유비가 패배하자 조운은 구원에 나서 영안까지 진군하지만 오군은 이미 물러난 후였다.

 

223 (건흥 원년)에 중호군, 정남장군이 되었고, 영창정후에 봉해졌는데 승진하여 진동장군이 되었다. 227년에 제갈량을 따라 한중에 주둔하고 위를 치기 위해 228년 제갈량이 군대를 이끌고 야곡도를 지나며 선전하니 조진은 대부대를 보내 이 곳을 맡게 했다. 제갈량은 조운을 시켜 등지와 함께 맞아 싸우게 하고 제갈량은 기산을 공격했다. 조운과 등지는 중과부적으로 기곡에서 패배하였는데 군대를 모아 굳건히 지켜 크게 패하지는 않았다. 제갈량이 군을 물린 후에 조운은 진군장군으로 강등된다. 229년 조운이 사망하자 시호를 순평후로 추증했다. 조운의 아들 조통이 대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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