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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 인물

삼국지 인물 65. 사마사 자원

[사마사 자원 司馬師 子元]

 

사마사의 자는 자원이며 하내군 온현 출신이다. 208년에 태어나 255년에 사망한다. 사마의와 정실 부인 장춘화가 낳은 적장자이다. 사마사는 우아한 풍채를 지니고 침학하며 의연하고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한다. 젊어서부터 하후현, 하안 등과 함께 명성이 높았다.

 

경초 연간(237 ~ 239)에 산기상시로 관직을 시작하였고 후에 중호군에까지 이른다. 239년 명제 조예가 임종 때 사마의와 조상을 고명대신으로 임명하였지만 조상의 의해 조정에서 배제되었고 사마사는 아버지 사마의를 따라 은밀히 조상을 주멸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249 (정시 10)에 아버지 사마의를 따라 거사를 일으키고 조상파에 대한 제거에 참여한다. 거사 당일 사마사는 숙부 사마부와 함께 사마문을 지킨다. 이 사건을 고평릉의 변이라고 하는데 사마사는 거사가 성공한 후 장평향후에 봉해지고 위장군에 임명 된다.

 

251 (가평 3)에 아버지 사마의가 사망하자 황제 조방에게 무군대장군의 벼슬을 받아 섭정을 맡게 된다. 다음해 252년에는 대장군이 되었으며 지절,도독중외군사,녹상서사,시중으로 옮겨져 문무의 권력을 거머쥐었다.

 

조정내에서는 사마씨의 전횡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인물들이 많았다. 254년에 중서령 이풍, 광록대부 장집 등이 사마사를 축출하고 하후현을 섭정에 취임시키려 하였다. 사마사는 이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풍,장집,하후현 등이 체포되어 삼족이 멸하게 된다. 또한 이 사건에 황제 조방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자 조방을 폐위하고 조모를 옹립한다.

 

이어 조모가 옹립된 후 사마씨의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져 진동장군 관구검과 양주자사 문흠이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사마사는 동생 사마소에게 도성 수비를 맡기고 직접 장군들을 이끌고 출진하였다. 당시 사마사는 눈 밑에 혹이 나 곪아 있었는데 의원을 통해 제거하려 하였지만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출병하게 되었다. 반란을 진압하고 문흠을 추격하던 도중 문흠의 아들 문앙의 반격에 의해 놀라서 눈의 상처가 악화되게 된다. 얼마 뒤 255년에 48세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사마사에게는 아들이 없어 사마소에게 후사를 맡긴다. 후에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이 황제에 오르자 묘호는 세종이라 받게 되고 시호는 경황제로 추증되었다.